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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Mar 09. 2021

『원피스』가 지금 재미없는 이유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36)

20여 년간 연재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 그런데 그 인기가 가면 갈수록 예전만 못합니다. 『원피스』가 재미없어진 이유는 앞서 <무한도전>이 재미없어진 이유와 맥락이 비슷합니다. 


『원피스』를 잠깐 설명하자면, 이 만화의 주인공은 ‘루피’라는 소년입니다. 만화는 이 소년이 고무고무 열매라는 악마의 열매를 먹고 해적왕이 되기 위해 바다로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고무고무 열매로 인해 루피는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초능력과 바다에만 들어가면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부작용을 얻습니다. 바다 위에서 싸워야 하는 해적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루피의 꿈은 여전히 해적왕. 동료들과 함께 온갖 시련과 역경을 뚫고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 성장을 다루는 콘텐츠가 보통 그렇듯, 약했던 루피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자신의 핸디캡을 강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원피스』가 성공한 원인을 짚어보면, 가장 먼저 주인공 루피의 캐릭터 설정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평균 이하였던 것처럼, 루피 역시 캐릭터 자체가 ‘평균 이하’였습니다. 작가 오다 에이치로는 의도적으로 루피에게 약하고 우스꽝스러운 열매를 먹였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멋진 능력을 주는 열매가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코믹 만화가 아닌 영웅 만화(히어로 물) 주인공에게 우스꽝스러운 ‘평균 이하’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정말 드문 설정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영웅 만화인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의 주인공들만 봐도 루피처럼 지능이 낮을지는 몰라도 능력만은 멋지고 뛰어났습니다.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의 전투 능력은 어릴 때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도 스포츠에 필요한 신체적 능력은 대적할 인물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반면, 루피의 능력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 처음에는 그다지 강하지도 않습니다. 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허접한 능력은 강점보다는 약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해적에게는 치명적인 ‘맥주병’까지 더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통 영웅 만화에서 볼 수 없는 ‘평균 이하’ 캐릭터 설정은 영웅 만화 장르의 인테리어를 비틀었을 뿐 아니라 극이 전개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평균 이하의 주인공이 고군분투해 결국 역경을 극복해내는 격변의 폭은 다른 영웅들이 역경을 극복할 때보다 훨씬 컸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한도전> 초창기 멤버들이 아주 드물게 무모한 도전에 성공할 때처럼 말이지요. 생존에 방해만 될 것 같던 고무고무 열매의 능력이 전투에서 의외의 결과를 낳을 때,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 낮은 지능이 아이러니하게도 강한 동료들을 모으고 해적단의 세를 불려가는 데 도움이 될 때, 허술했던 모든 것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약점이 강점으로 변모할 때, 그 격변에 독자는 당황하고, 집중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가령 다리 한쪽 없는 영웅이 전투에서 승리할 때와 사지 멀쩡한 영웅이 전투에서 승리할 때 독자가 당황하고 집중하는 정도는 분명 다릅니다. 격변의 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혹평은 루피가 형 에이스를 눈앞에서 잃은 ‘정상결전’ 이후로 시작됩니다. 『원피스』는 루피가 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장기간 휴재했습니다. 장기 휴재 후 작가는 루피와 동료들의 ‘2년 후’ 이야기를 그렸는데요. 휴재 전과 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루피를 포함한 해적단 멤버들이 2년 동안 각자 훈련에 정진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평균 이하에서 평균 이상으로 성장한 것처럼 말이죠. 


루피와 동료들은 과거에는 상대도 못 하던 무시무시한 적들을 쉽게 해치워버리고, 루피 목에 걸렸던 현상금도 단 몇 달 새에 3억에서 10억으로 펄쩍 뜁니다. 그리고 루피는 곧 바다의 다섯 번째 황제, ‘오황’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괄목상대라고 표현할 만큼의 큰 성장. 그러나 이 성장은 분명 독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고 강해진 루피는 이전처럼 격차 큰 변화를 끌어낼 수 없었습니다. 

 

 『원피스』의 재미는 평균 이하의 주인공이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적을 우스꽝스럽고 약한 능력으로 쓰러뜨리는 격변과 영웅 만화 장르의 일반적인 인테리어를 파괴한 특이에 기인했습니다. 이러한 격변과 특이는 모두 루피가 평균 이하라는 설정이 키였습니다. 그러나 루피가 평균 이상이 된 후부터 격변의 폭은 작아졌고, 파괴됐던 영웅 만화 장르 역시 복구됐습니다. 『원피스』가 재미를 잃은 이유입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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