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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Mar 11. 2021

미드 <슈츠> 그 10년 인기의 비결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38)

플롯으로 인한 격변의 폭이 유독 커서 성공한 드라마가 있습니다. 미국의 장수 드라마 <슈츠>입니다.

이 드라마의 중심 플롯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마찬가지로 ‘금지된 사랑’입니다. 천재적인 암기력의 소유자 마이클 로스와 뉴욕 최고의 변호사 하비 스펙터, 두 주인공은 각각 금지된 사랑을 합니다. 로스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등으로 변호사가 될 수 없어 불법으로 변호사가 되고, 남들을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직업을 사수해냅니다. 또 다른 주인공 스펙터는 로스의 인성과 뛰어난 능력을 사랑해 그의 사기행각을 덮어주고 자신의 변호사 자리를 걸어가며 로스를 지켜냅니다.


10년 동안 방영된 아홉 개 시즌 전체는 이러한 ‘금지된 사랑’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이 ‘금지된 사랑’으로 인해 일어나는 격변은 드라마의 장르마저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가장 기가 막혔던 격변은 변호사로 계속 일할 것만 같았던 로스가 자신의 비밀이 회사 동료들과 연인에게 피해가 될 것을 두려워해 금융업계로 전업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황당하게도 법조 드라마였던 <슈츠>는 갑자기 금융 드라마로 변합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급격한 변화가 드라마 장르의 변화까지 이끌어낸 것입니다. 무려 한 개의 시즌이 흐르는 동안 로스는 법조계가 아닌 금융업계에서 종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격변은 또 다른 격변을 낳습니다. 큰 투자회사에서 일하게 된 로스는 자신의 상사였던 스펙터를 하대할 수 있는 위치가 됩니다. 실제로 로스는 과거 스펙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스펙터를 하대하는데요. 비유하자면 당신이 하대했던 후배가 어느 날 갑자기 선배가 돼 당신에게 큰소리를 치는 격입니다. 장르의 변화에 이어 상하관계의 역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로스를 둘러싼 조연들이 처한 상황 역시 ‘금지된 사랑’을 중심으로 크게 변합니다. 로스의 연인과 상사들은 처음 얼마 동안은 로스의 거짓말을 용납할 수 없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로스와 비밀을 공유하며 비밀을 덮어주는 공범 관계가 됩니다. 그들도 로스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된 셈입니다. 조연들은 로스의 비밀을 덮어주려다가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법을 어기기도 합니다. 반면, 로스의 비밀을 이용해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이도 있습니다.  


시즌 5에서는 스펙터의 비서 도나가 로스의 비밀을 덮어주려다가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고,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이였던 스펙터와 멀어지게 됩니다. 유독 끈끈했던 둘의 사이가 소원해질 것이라고는 다섯 시즌이 흐르는 동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고 맙니다. 도나는 스펙터의 경쟁자인 리트의 비서로 가버리고는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참고로 비서 도나와 스펙터의 사랑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금지된 사랑’입니다.)  


도나와 헤어진 충격으로 인해 스펙터는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고, 다음 시즌(시즌 6)은 스펙터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스펙터는 드라마상에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로, 말론 브란도를 닮은 외모에 머리도 좋고 승률도 100%를 자랑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스펙터가 정신적으로 굉장히 나약해지는 것입니다. 격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급격한 상황 변화로 인해 드라마는 또다시 장르가 바뀝니다. 로펌 이야기는 곁다리가 되고 스펙터의 정신과 상담이 중심축이 됩니다. 법조 드라마에서 금융 드라마로, 이어서 정신과 상담 드라마로, 격변으로 인해 또다시 장르가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시즌에서는 로스가 가짜 변호사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결국 로스가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 시즌에서 로스는 <쇼생크 탈출>에 버금가는 감옥 탈출기를 찍습니다. 실제로 로스가 감옥에 들어가자 한 간수가 “쇼생크 탈출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야”라고 말합니다. 격변으로 인해 드라마는 법정 드라마에서 금융 드라마에서 정신과 상담 드라마에서 감옥 탈출기로 장르가 변합니다. 끝이 아닙니다. 로스의 감옥행으로 인해 뉴욕 최고를 자랑하던 로펌은 명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되고, 수십 명이던 변호사가 단 세 명으로 줄게 됩니다. 이후 남은 세 명의 변호사들이 회사를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슈츠>가 그저 뛰어난 변호사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로펌 이야기만 계속했다면 아홉 개 시즌은 힘들었을 겁니다. 한편, <슈츠>의 격변은 그 변화의 폭이 장르를 바꿔버릴 정도로 큰데도 불구하고 막장드라마의 막장 요소도, 개연성 없는 B급 요소도 없습니다. 고급스러운 격변이 계속됐던 것 역시 <슈츠>의 장수 이유입니다.    


한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 역시 두 번의 격변으로 인해 극의 장르가 바뀝니다. 아내의 납치범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시작한 이 영화는 이후 바람피운 남편에게 복수하는 아내의 복수극으로, 그리고 아내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밝혀진 후에는 호러, 혹은 그런 말이 있다면 사이코패스극으로 변화합니다. 149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격변과 그로 인한 두 번의 장르 변화에 관객은 당혹하고 집중했습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19일 발행될 예정이며,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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