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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Mar 15. 2021

박찬욱의 복수가 ‘다른’ 이유

'재미의 발견' 예약 판매 중 선공개 (40)

‘복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감독이 있지요. 우리나라의 보물이라고 해도 그 찬사가 아깝지 않은 박찬욱 감독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가 ‘복수 삼부작’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주인공이 크게 당하고, 이후 자신을 괴롭혔던 악당에게 복수한다. 복수(revenge) 플롯은 보통 이렇게 단순합니다. 이 플롯의 첫 격변은 주인공이 크게 당하면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복수가 시작되면서 또 한 차례 격변이 일어납니다. 주인공과 악당이 처한 상황이 전복됩니다. 악당에게 처절하게 짓밟혔던 주인공이 이제는 반대로 악당을 짓밟습니다. 약자였던 주인공은 강자였던 악당에게 우위를 점하고, 강자였던 악당은 철저하게 약해져 주인공 앞에 무릎을 꿇고 고통받는 것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이 악당에게 더 처참하게 당할수록, 더 약할수록  더욱 큰 당혹과 집중이 일어납니다. 복수가 일어날 때 격변의 폭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박찬욱 감독 역시 복수 삼부작에서 약자의 고통과 약자가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을 부각합니다. 격변의 폭을 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컨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주인공은 듣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인데, 신장이식을 받지 못해 고통받는 누나까지 부양해야 합니다. 누나의 수술비를 벌어야 할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다니던 공장에서 해고됩니다. 퇴직금과 자신의 신장을 판 돈으로 누나의 신장을 마련해보지만, 이제는 수술비가 부족해 누나가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주인공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하게 지내던 한 아이를 거짓으로 납치하게 되지만 수술비를 받아온 날 누나가 자살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고향 강가에 누나를 묻으러 가는데 곧 가족에게 돌려보낼 아이가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버립니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영화에서 약자인 주인공의 고통을 나열하자면 위 문단만큼 긴 문단이 두 개나 더 필요합니다. 약자는 미안할 정도로 약하며, 철저히 짓밟힙니다. 그래서 약자가 자신을 괴롭혔던 자들에게 복수를 감행할 때 그 격변의 크기는 더욱 커집니다. 


여기서부터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복수 플롯은 흔합니다. 복수 삼부작만큼 격변의 폭이 큰 영화들도 드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다른 복수극과 달리 예술적이라고 호평을 받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일정 부분 전형적인 복수 플롯의 틀을 깼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복수 플롯에서는 늘 완전한 악인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자신을 짓밟았던 그 악인에게 통쾌하게 복수합니다. 그래서 복수 플롯을 사용한 영화는 대개 결말이 후련합니다. 복수는 곧 악의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찬욱의 복수극은 어쩐지 결말이 찝찝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복수극의 문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주인공이 장기밀매업자에게 복수하는 전형적인 복수극 외에도 한 가지 복수가 더 일어납니다. 영문도 모른 채 딸이 납치 당하고, 딸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벌이는 복수극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딸을 납치하고 죽게 한 주인공에게 복수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이 복수하는 대상이 악인이 아니며 악한 의도가 없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아버지의 복수를 이해하지만 통쾌한 기분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악을 짓밟는 전형적인 복수극과 달리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어쩔 수 없이 죄 없는 자가 죄 없는 자를 짓밟기 때문입니다. 


<올드보이>에서도 악인을 짓밟는 후련함은 일지 않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15년간 감금당한 샐러리맨의 복수를 그린 이 영화는 알고 보니 또 다른 복수극이었습니다. 주인공이 감금을 당했던 이유는 과거 그가 저질렀던 죄의 업보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 때문에 누나를 잃게 된 이가 주인공을 감금함으로써 복수를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복수는 찝찝합니다.

 

한편, 세 영화 중 가장 나중에 개봉한 <친절한 금자씨>(2005)는 복수 삼부작 중에서 유일하게 전형적인 복수극의 문법을 따르는 듯합니다. 이영애가 자신을 억울한 죄인으로 만들어 13년간 감옥에서 썩게 한 살인마 최민식에게 복수를 한다. 플롯만 보면 보통 복수극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복수라는 지저분한 과정을 눈처럼 깨끗한 고고함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다른 복수극들과 달랐습니다. 박찬욱은 이 영화에서 ‘복수란 함께 더러워지는 것’이라는 클리셰를 깼습니다. 더러운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서는 치우는 사람의 손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손을 강박적으로 깨끗하게 유지하며 쓰레기를 치워냈습니다. 이를 위해 영화는 다양한 장치와 상징을 사용해 이영애의 복수를 고결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크린은 대부분 눈처럼 희며, 이영애의 말과 행동은 ‘결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차갑고 건조합니다. 이영애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최민식에게 자식을 잃은 피해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내며 용서를 빕니다.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까지, 혹은 자신이 모르고 지었을지도 모르는 죄까지 사죄하며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려 한 것입니다. 최민식을 잡은 뒤에는 피해를 본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수할 기회를 줬습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은데도 자신만 복수한다면 그것 역시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박찬욱 감독은 죄가 죄를 낳는 일반적인 복수가 아니라 눈처럼 깨끗한 복수를 그려낸 것입니다. 모든 예술적인 것들은 클리셰를 깹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이번 주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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