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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Mar 16. 2021

전통적인 플롯 두 개를 절묘하게 섞은 영화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선공개 (41)

전무후무한 인기를 누린 코미디 영화 <행오버>. 숙취(Hangover)라는 제목답게 이 영화는 “We don't remember anything”(우리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이라는 대사로 시작합니다. 영화사상 가장 ‘보통’에서 벗어난 ‘돌아이’ 캐릭터 앨런이 전날 밤 친구들을 약물에 취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그 약 기운으로 인해 속된 말로 미친 상태로 놀다가 다음날 심한 두통과 함께 일어나고,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어나면 꼭 친구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영화는 잃어버린 친구 한 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지만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딘지 알 수 없는 호텔이고, 앞니가 빠져 있고, 얼굴에는 문신이 돼 있고, 가슴 성형 수술이 돼 있고, 화장실에서는 호랑이가 튀어나옵니다. ‘도대체 전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등장인물들은 잃어버린 친구와 함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합니다.  


<행오버>는 플롯이 하나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친구를 찾기 위해서 미션을 하나씩 수행해나가는 퀘스트(Quest) 플롯과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정체성(어젯밤 뭘 했는지)을 찾아 나가는 정체성 찾기(Gain Identity) 플롯이 절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는(Gain Identity) 플롯에서 격변은 등장인물이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을 때, 그리고 잃어버린 정체성이 하나씩 회복될 때 일어나며, 관객은 그 격변들에 당혹하고 집중합니다. 퀘스트 플롯에서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그리고 잃어버린 무언가에 한 발짝씩 가까워질 때가 바로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점입니다. 


<행오버>는 이 두 플롯이 좋은 케미스트리를 이루며 전개됩니다. 예를 들어 집 화장실에 뜬금없이 앉아 있는 호랑이는 어젯밤 일어났던 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Gain Identity 플롯의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친구들은 소중한 친구 한 명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깨닫게(Quest 플롯의 시작) 됩니다. 친구들은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 나서는 동시에 어젯밤 일어났던 일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친구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앞니가 빠진 이유가 밝혀집니다. 술집에서 약에 취해 본인이 직접 펜치로 뽑은 것이었습니다. 얼굴에 문신이 새겨진 이유 역시 밝혀집니다. 약에 취해 행인과 대판 싸우다가 경찰과 시비가 붙었고, 경찰을 피해 도망친 문신전문점에서 자발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친구를 찾을 실마리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잘 섞인 두 개의 플롯을 타고 끊임없이 급격하게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는 관객을 시종일관 당혹하고 집중하게 합니다. 


한편,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은 터무니없는 답으로 해소되고, 친구를 찾는 미션들은 너무나 엉뚱한 방식으로 수행됩니다. 격변이 모두 웃음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흐르기에 <행오버>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반면,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주인공 제이슨 본 역시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극의 분위기는 <행오버>와 달리 진중합니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격변은 긴장감과 심각함을 향해 흐르기 때문입니다. “까꿍” 뒤에 나타난 엄마의 표정이 웃음이었다면 아이는 웃습니다. 반면 “까꿍” 뒤에 엄마가 울고 있었다면 아이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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