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일 Mar 17. 2021

플롯을 비빔밥처럼 섞어라

'재미의 발견' 출간 전 선공개 (42)

앞서 빌리 아일리시와 봉준호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떤 것이 재미있다면,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쉽게 정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플롯이 무엇인가?”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역시 봉준호 영화의 장르처럼 “한두 개로 쉽게 정의할 수 없다”라고 말해야겠습니다. 미스터리(Mystery), 구조(Rescue), 모험(Adventure), 구원(Redemption). <애드 아스트라>에 섞여 있는 전통적인 플롯들을 분석해보면 대표적으로 이렇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주선 조종사 로이 맥브라이드는 아버지가 우주 어딘가에서 살아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을 상부로부터 듣게 됩니다. 20여 년 전 우주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말이지요.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아버지가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째서 살아있고, 어째서 지구를 위협하지? 아버지는 과거 인류의 진보를 위해 가장 먼 우주를 개척했던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이 지점에서 미스터리가, 그리고 미스터리 플롯이 시작됩니다. 


이후 맥브라이드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화성으로 떠납니다.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전파장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화성에서 아버지에게로 보낸 메시지가 효과가 없자 상부에서는 아버지를 죽이고자 합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말을 듣자 맥브라이드는 아버지를 구조하고(Rescue 플롯 시작) 아버지가 도대체 왜 지구를 위협하는지, 혹은 정말로 살아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뜻밖의 여행’을 떠납니다(Adventure 플롯 시작). 


그리고 이 모험을 통해 맥브라이드는 일종의 구원(Redemption : 한 인간을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을 받습니다. 그는 후반부에서 아버지를 만난 뒤 아버지와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좇았던 우주가 실제로는 너무나 허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를 등한시하고 오로지 허무한 우주에만 천착했던 아버지와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로 돌아온 맥브라이드는 그동안 우주에 집중하느라 포기했던 삶, 소홀했던 인간관계를 회복합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찾은 것입니다. 


 <애드 아스트라>는 이렇게 네 가지 전통적인 플롯이 잘 비빈 비빔밥의 재료들처럼 섞여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그 자체로 특이(特異)하고, 플롯을 따라 일어나는 격변 또한 많습니다. 한편, 이렇게 많은 플롯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단 하나의 플롯으로 규정하라면 그래도 미스터리 플롯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미스터리 플롯에서 당혹감과 집중은 등장인물이 마주한 미스터리가 전에 없던 것일수록 커집니다. 20여 년 전에 인류를 위한 우주탐사를 떠나 사망했다고 알고 있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우주 저편에서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미스터리. <애드 아스트라>의 미스터리는 ‘보통’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은 기자 생활을 하며 3년여 쓴 책 '재미의 발견'의 일부입니다. '재미의 발견'은 3월 26일 정식 출간되며(어쩌면 출간일이 앞당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서 예약 판매 중입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전통적인 플롯 두 개를 절묘하게 섞은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