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기도

by 김승일

내 기도는 보통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가득 차있다.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 필요한 양식 주셔서, 재미난 것 보게 해주셔서, 오늘 하루를 주셔서,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셔서, 일을 주셔서, 가족을 주셔서, 연인을 주셔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너무 감사할 일이 많아서

매일 저녁 홀로 기도를 시작하면 30분 정도 이어진다.


과거 나는 꽤 오랜 시간

점심을 먹기 전에도 1~2분씩 기도했었다.


기도하는 시간이 좋았고,

밥 먹기 전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곁에 있든 없든

점심시간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그런 식으로 길게 기도했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내 기도를 이해해주는

좋은 사람들인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내가 기자라서 가능한 것도 있었다.

앞에 누가 앉든 양해를 구한다면

기자는 누구에게나 크게 눈치 볼 일이 없는 직종이다.(나는 무엇보다 그게 좋았다. 갑질을 말하는 건 절대 아님)

남들이 밥을 먹기 시작할 때

나는 기도했다.


부끄럽지만,

문제는 그 기도 시간이 이중적이었다는 데 있었다.


열에 아홉 번은 기도를 오래 하는 게 가능했지만

한번은 그렇지 않았다.

양해를 구하기 껄끄러운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다.


회사 대표님과 밥 먹는 시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분과 밥 먹는 시간,

공적인 자리,

잘 모르는 사람과 서먹서먹한 자리 등에서는

몹시 눈치가 보여서 기도를 30초 내외로 끊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끊은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 가기 전에 마음속으로 기도했고(5분 정도),

그렇지 못한다면 식사가 끝난 후 마저 이어 했다.

나는 어쨌든 식사 기도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것이 남들에게 이중적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내가 따로 기도를 하는 줄 모르는 이들에게는

사람을 가려가며 기도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높은 사람과 있을 때는 기도를 오래 하지 못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는 오래 하고

그런 이중적인 인간으로 보일 게 뻔했다.


더욱 불안했던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나처럼 기도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들이 나의 기도를 오해해

신앙과 믿음은 접었다가 폈다가 할 수 있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 또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점심 식사든 저녁 식사든

남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무조건 기도를 30초 이내로 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중적인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믿는 이의 신앙과 기도를 지킬 수 있다.


대신 식사 자리에 가는 길에 기도를 한다.

혹은 갑작스러운 식사 자리가 생긴다면

식사가 끝난 후에 기도를 이어서 한다.


그렇게 내 기도는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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