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
누군가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말하라면 단연 야곱이라고 하겠다.
그는 훗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인물이다.
후에 그의 이름이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한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뒤에 있다’ ‘발꿈치를 잡다’ ‘속여 넘기다’는 뜻의 ‘아카브’에서 유래했다. 뭐, 뒤통수를 치다 정도의 의미다.
성경에는 왜 이름을 이런 식으로 짓지? 하는 이름들이 꽤 있는데 야곱이 대표적이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고 했던가
창세기 후반부는 야곱이 꾀를 내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나쁘게 말하면 뒤통수를 치는 장면들이다.
가령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에서의 장자권을 얻는다.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가 몹시 배가 고파 야곱이 끓이는 팥죽을 원하자
“지금 형의 장자권을 나한테 팔아. 그러면 내가 이 죽을 줄께.” 라고 말한다.
에서는 덜컥 “그래” 하고 팔아버린다.
구약 시대는 유독 첫번째를 신성시하고 중시한다.
동물도 맏배로 제사 지내고, 아들도 장자에게 축복을 몰아준다.
그렇게 중요한 장자권을 쉽게 넘겨버린 에서의 잘못도 크지만
야곱의 생을 보면
장자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배가 고픈 형 앞에서 팥죽을 끓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후에 그는 형의 축복도 빼앗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아버지 이삭이 에서에게
“내 아들아 네가 사냥한 고기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다오. 내가 죽기 전에 그 음식을 먹고 너를 축복해주겠다.”고 하자
에서보다 야곱을 귀여워한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형의 축복을 가로채라고 말한다.
그리고 야곱은 이 말에 이렇게 답한다.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고 저는 살이 매끈한데 만약 아버지가 제 살을 만져보면 제가 속인 것을 알 거예요.”
형의 축복에 관심이 없었다면 “싫어요”라고 답했어야 한다.
리브가의 말대로 야곱은
염소 가죽을 손과 목에 두르고
에서의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채
형 흉내를 내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마지막 축복을 받는다.
당연히 에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 야곱을 죽이려고 한다.
성경상으로만 따지면 에서는 정말 잘못이 없다. (굳이 꼽으라면 장자권을 경시한 것 정도)
이후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고
여기서도 꾀쟁이의 면모를 보이며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성경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라반과 야곱의 케미스트리가 좋다. 야곱이 도망친 사정을 듣고 라반은 “네가 정말 우리 피붙이로구나. 정말 우리 식구야.” 라며 야곱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라반은 20년 동안 수차례 야곱의 뒤통수를 친다. 결국 마지막에는 야곱에게 뒤통수를 맞지만.
그런데 내가 야곱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야곱이 그 이름처럼 속임수를 쓰고
꾀를 내서 자신이 갖지 못할 것을 갖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몹시 귀여워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형에게서 도망친 야곱은 돌 하나를 주워다가 배게 삼아서 잠이 드는
처량한 신세가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꿈에 나와서 그를 위로한다.
“나는 여호와이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네게 그리고 네 후손에게 주리라. 네 후손이 엄청나게 불어나 땅의 먼지만큼 많아지리라.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네 후손들이 그곳에서 가득하게 살리라. 또한 너와 네 후손으로 말미암아 뭇 나라들이 복을 받으리라.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지켜 주리라. 분명히 말한다만 그렇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더라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는다.
“여호와께서 바로 이곳에 계시는구나. 그분이 바로 여기에 계신데도 내가 그걸 몰랐구나”하고 중얼거린 후 배게로 베고 잤던 그 돌로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다 기름을 붓고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다.
하나님께서 그를 귀여워 하셨다는 정황은 또 있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재산과 자녀, 종을 이끌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은 형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 한다.
형이 자신을 만나러 400명의 종을 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야곱은 형에게 줄 선물을 여러 차례 나눠서 먼저 보내고
가족들까지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가장 뒤에서 걸어간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야곱 앞에 어떤 존재가 나타난다.
그리고 야곱은 밤새도록 그 존재와 씨름을 한다.
씨름은 동이 터올 무렵까지 계속 되고
결판이 나지 않자 그 존재가 야곱의 엉덩이를 후려치고
이제 날이 새려고 하니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아챈 야곱은
“안 됩니다. 내게 축복하실 때까지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고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자 그 존재가 이렇게 묻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한다.
“야곱입니다.”
“네 이름을 이제는 더 이상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네가 하나님과도 싸워서 이겼고 사람들과도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그 존재가 야곱을 축복하고 사라지자 야곱은 이렇게 감탄한다.
“아니, 내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서도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형을 만날 일을 두려워하던 야곱을
하나님은 밤새도록 씨름하며 그를 보듬고, 엉덩이를 후려치고,
너는 하나님과도 싸워서 이겼고 사람들과도 싸워서 이겼다고 용기를 북돋워 주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아들을 귀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내가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