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매도는 특히 부정적인 정보들이 주가에 적절히 반영되는 것을 돕는다. 경영자들이 기업에 부정적인 정보를 숨기고 싶어하는 탓에 부정적 정보는 합법의 테두리 끝에서 두리뭉실하게 공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매도 투자자들은 부정적인 정보를 끝까지 추적해 밝혀낸다. 부정적 정보들이 숨겨진 탓에 주가는 과대평가되어 있을 것인데 이를 폭로하면 주가하락을 통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매도자들이 회사에 불리한 정보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이는 경영자들에게는 정보를 조작하거나 숨기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가 될 수 있다. 허튼 수작을 부리더라도 다 밝혀낼 터이니 나쁜 짓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이러한 경고가 빈수레의 소음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들도 이미 나와 있는데 한 연구는 공매도가 허용되는 경우 회계장부상 숫자들을 예쁘게 조작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게 됨을 실증분석을 통해 보여줬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공매도가 금지되면 현재 주가가 고평가되어 있어 앞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따라서 시장에는 앞으로 주가가 오를 거라고 믿는 투자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시장이 이렇게 한 쪽으로 쏠리면 버블이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 불행히도 버블이란 언제고 꺼지게 되어 있다. 버블이 한꺼번에 꺼지면 우리는 그것을 금융위기라고 부른다.
곡물을 갉아먹는 참새를 가리켜 해로운 새라고 칭했던 마오쩌둥의 손가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참새잡이가 참새를 천적으로 삼는 해충들을 들끓게 했고 이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대폭 확대되어 수천만 명이 굶어죽은 그 참담한 현대사 말이다. 참새는, 곡물을 갉아먹어 농작물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해충을 잡아먹어 더 큰 피해를 막는데 도움이 되는 이로운 새다. 공매도는 자본시장의 참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09048
2.
혼란이 생기면 그 혼란을 틈타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위기가 생기면 언제나 돈부터 챙기고 본다.
전자는 좋지 않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
1950년 6월 26일 월요일이 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당시 유일하게 외국환을 취급했던 한국은행 창구에는 아침부터 주한 외교사절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65만달러를 인출했다. 점심때가 되자 의정부에서 피란민들이 내려오고, 여의도(당시 경기도 지역) 상공에서는 소련 야크기와 미군 무스탕기가 공중전을 벌였다. 김포에서는 북한 전투기가 공항을 폭격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09133
3.
‘길거리 방역’에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들인 돈과 공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흰 방역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소독약을 분무하는 모습이 우리 눈에 익숙하니 말이다.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방역소독 지침을 지킨 지자체는 서울 마포ㆍ서대문구, 충북 영동군, 전북 익산시, 경남 진주시 등 5곳뿐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동안 전국 지자체들이 방역용으로 소독약을 구입하는 데 쓴 돈이 최소 1,394억원이라는데, 혈세 대부분을 허공에 날린 것 아닌가. 길거리 방역의 쓸모는 결국 언론 보도 사진용 혹은 방송용에 그친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09210
4.
우리가 시간을 말할 때를 보면, 흥미롭게도 ‘시(時’)는 우리말로 읽고 ‘분(分)’은 중국말로 읽는 기이한 현상이 있다. 3시 10분을 예를 들어보자. 이를 읽으면 ‘세시 십분’이 된다. 그런데 앞의 시는 하나·둘·셋 등과 결합된 한시·두시·세시 등인 반면, 뒤의 분은 십분·이십분·삼십분·사십분 등으로 읽힌다. 즉 한·두·세는 순우리말이지만, 십(十)·이십(二十)·삼십(三十)은 한자어인 것이다. 이는 십삼분(十三分)처럼 분이 세분화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왜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우리말과 한자 표현을 같이 쓰는 것일까? 그것은 한자가 들어온 뒤에 분 개념이 세분화되면서 한자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런 흔적이 지금까지 지문으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즉 시간에서 시는 우리 것인 반면, 분은 빌려 쓰는 표현인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기원을 추구할 때는 빌려온 것이 의미 파악이 쉽고, 처음부터 자생한 우리말은 원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 오래되어 기원을 추구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09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