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는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원빈)을 지키기 위한 엄마(김혜자)의 분투기다.
한 소녀가 살해당하고 아들이 범인으로 몰리는데 아무도 아들을 돕지 않는다.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지으려 하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엄마는
아들이 정말 소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를 봤다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처음과 마지막 시퀀스
김혜자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런데 두 춤을 지켜보는 관객의 감정은 사뭇 다르다.
영화의 도입부에 배치된 김혜자의 독무는 굉장히 뜬금없다.
그 춤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관객은 김혜자의 슬픈 얼굴에도 불구하고
그 춤을 미친 사람의 춤으로, 기괴하게만 받아들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부에 배치된 김혜자의 춤은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 기괴한 군무이지만
기괴하기보다는 슬프게 느껴진다.
당신에게 아들이 있고
그 사랑하는 아들이 누군가를 죽였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면
당신은 아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춤을 출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들이 아들을 살해한
성경의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모릅니다. 제가 제 아우를 돌보는 사람입니까?”
“가인아, 어쩌자고 네가 이렇듯 엄청난 일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구나.”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쳐죽인 가인에게
평생 이 땅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벌을 내린다.
그리고 동시에 누구든지 가인을 죽이는 자에게는 일곱 배의 형벌을 내리겠다고 하신다.
자가당착.
저주를 내리는 동시에 사랑을 하신 것이다.
비록, 결코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이러한 결정에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분명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다른 이의 피를 흘려
죽게 하였다면
그도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리라.
그도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나 하나님은 사람을
내 모습으로 나를 닮게 지어낸 까닭이다.” (창세기 9장 6절)
춤을 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밀어내지도 잡지도 못하는
저울질 하듯 든 두 손이
마치 벌을 서는 것처럼 보이는
그 춤을.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당신과 닮게 지어낸
하나님의 자녀다.
당신의 얼굴을 쏙 빼다 박은 아들과 딸이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사랑하기 때문에 추는 춤을
그 슬픈 춤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