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한 점쟁이 찾으시나요?

by 김승일

부끄럽지만

수년 전 운세를 알려주는 앱을 깔아서 몇만 원을 결제한 적 있다.

신문을 펼쳐도 가장 먼저 띠별 운세를 찾아보았고

타로 카드 읽는 법도 배웠다.

사주를 잘 보는 무당을 인터넷으로 물색한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불안하던 시절이었지만, 그것이 변명은 되지 않는다.

진짜 이유는, 그 시절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희는 어떤 것이든 피째 먹지 말아라. 또 점을 치거나 복술 행위를 하지 말아라. (중략) 너희는 무당이나 박수를 따라다니지 말고 점쟁이에게 어떤 일이든 묻지 말아라. 그들과 가까이해서 부정 타지 말아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다.” (레위기 19장 26절, 31절)


복술은 ‘점을 치는 방법이나 기술’, 복술 행위란 그러니까 타로카드나 화투 등을 이용해 개인의 점을 치거나 남의 점을 봐주는 것이 된다. 무당은 여성, 박수는 남자 무당이다.


나도 한때 그랬으니 할 말은 별로 없지만, 기독교인들이 점을 보러 다니는 것을 참 많이 봤다. 가령 나는 부모님을 포함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들이 운세 앱을 읽고 계신 것을 봤다. 며칠 전에도 친한 회사 부장님이 오늘의 운세를 보내주셨는데, 역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이다.


성경에서는 명확하고 엄격하게 복술 행위와 점을 보러 가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띠별 운세를 확인하고 점을 보러 다니는 걸까? 사이비는 철저하게 배척하면서, 어째서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는 복술 행위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거실 한가운데 늘 성경책을 펼쳐 놓으시는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그러한 운세나 점, 무당 등을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1940년대에 태어나신 내 조부모께서는 제사도 지내지 않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이는 성경이었다. 누군가 운세에 대해, 점에 대해, 용한 무당에 대해 말할 때 그들에게 내가 보여준 성경 구절은 그들이 모르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경을 읽지 않았다. 성경에서 복술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교회를 나와서 점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들은 보통 성경 말씀보다 목사님의 설교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가령, 지난주 설교 말씀은 기억해도, 그 설교 말씀의 바탕이 된 성경 구절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성경은 무시하고, 사람의 말을 중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가 보여준 성경 구절들로 더 이상 점이나 운세를 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과거의 나처럼 잘 몰랐을 뿐이고, 그 무지는 성경을 읽지 않는 귀찮음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모르고 저지른 죄라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책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르고 짓는 죄’가 ‘알고 짓는 죄’보다 나쁘다. 알고 짓는 죄는 반성할 수나 있다. 모르고 짓는 죄는 반성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당신은 성경을 읽는 기독교인인가? 교회는 다니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당신은 높은 확률로 성경에서 금지한 죄를 짓고 있고, 그 죄에 대한 반성의 기회조차 갖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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