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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09. 2020

2020.07.09. 오늘의 기사

1.


식민지 조선에도 ‘퀴어’가 있었다. 1921년 동아일보 기사는 “24세까지 ‘계집노릇’을 해오다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된 일본인”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929년 ‘학생’지에는 “내가 만약 그리운 옛 여학생 시대로 다시 한번 돌아간다면 나와 같은 성질을 가진 동무와 철저한 동성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절절한 고백이 실려있다. 물론 이 얘기를 다루는 시선은 곱지 못하다. '변태성욕'이라는 설명 아래, 흥밋거리 정도로 다룬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이란 현실 아래에서도 복잡한 정체성과 욕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075


2. 


인간은 시간을 잘라낸 후 거기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다. 요컨대, 인간은 시간의 발명가이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일 년을 네 개의 시간으로 쪼갠 ‘분기’라는 시간을 만들어 사용한다. 학교에서는 ‘학기’ ‘방학’ ‘학년’이라는 시간이 유통된다. 


시간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즉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출근 시간만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는 신축성이 생겨서 사람들로 가득 찬 만원 버스에 자신을 기꺼이 구겨 넣을 수 있게 된다. 근무 시간은 우리를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낼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근면 성실한 기계로 만든다(상사 앞에서만). 이렇게 시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도록 주문한다. 시간의 요구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도 적용된다. 행정기관이나 기업들은 구성원들에게 분기별 목표를 주고 그 일을 달성하라고 독려한다. 학교에서는 학기말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시험을 보고 평가하라고 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138


3.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아야 소피아 성당이 모스크로 처음 바뀐 1453년은 기독교 세계에는 충격의 해였다. 성당 벽을 빼곡히 채운 황금빛 모자이크 성화는 모두 회벽으로 덧칠해 가려졌는데, 그로부터 다시 500년이 흘러 그 회벽을 들어내고 박물관으로 바꿀 때는 이슬람 세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신전의 주인이 바뀌는 건 비단 아야 소피아만의 일이 아니다. 다신교 신전에서 기독교 교회로 바뀐 로마 판테온부터 힌두 신에게 바쳐졌다가 불교사원으로 변모한 앙코르와트까지, 제국의 흥망에 따라 또는 힘을 가진 자의 믿음에 따라 성지에 머무는 신도 달라졌다. 중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혔던 스페인 코르도바의 모스크 한가운데에도,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생뚱맞게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박혀 있다. 하지만 이 성당을 짓기 위해 모스크를 허물라고 지시한 카를 5세조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을 허물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건물을 지었다”며 후회했다니, 세상일이란 이토록 묘하고 중첩적이다


이번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다시 모스크로 바꾼다는 소식에 세계뉴스가 시끌시끌하다. 현재 그곳에 사는 이들의 믿음대로 모스크로 돌아가야 할지, 원래 지은 목적대로 성당이 되어야 할지, 아니면 어떤 종교 행위도 금지하는 박물관으로 남아야 할지, 모두에게 맞는 정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272


4. 


21대 국회의원 대다수는 교회의 '낙선' 위협에 손을 떨며 스스로 법안을 회수해야 했던 선배들의 잔혹사를 익히 아는 모양이다. 흑인 차별에 항의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차별금지법 입법 활동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이 내건 피켓 문구는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였는데 사실은 낙선 위험이 없는 차별만 반대하는가 보다. 법안 발의자인 권인숙·이동주 의원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역시 무소불위 거대 여당답지 않게 당론 논의조차 외면하고 있다. 의원들은 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사 설문에 응답하는 것조차 주저했다. 익명 조사인데도 가장 많은 선택은 '무응답'이었고 "이런 조사를 왜 하냐" "설문에 답하지는 않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토록 교회를 두려워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실은 알고 계시나 모르겠다. 차별금지법 발의 의원들에게 항의뿐 아니라 소액 후원금도 밀려들고 있다는 것을.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88.5%(6월 국가인권위 국민인식조사)의 국민이 어느 순간 훨씬 위협적인 세력으로 조직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은 아마 국회 안에서 실망스러운 논의 끝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반대표를 던진 의원 명단이 공개되는 때가 아닐까.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 반대는 지금까지 효과가 있었지만 분명 과대 대표되어 있다. 애초에 그들의 동성애 반대는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개신교 세력을 유지ㆍ강화하기 위해 적그리스도를 불러온 것과 같다. 2000년대 이후 교인 수가 크게 줄고 교회 세습과 호화 증축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등 보수 개신교의 위기가 고조될 때 반(反) 동성애 활동은 "공포와 혐오를 통해 세력을 넓히는" 데에 효과적이었다고 한채윤씨는 분석한다(책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길게 보면 동성애 혐오는 반공의 효력이 떨어지면서 보수 개신교가 새로 발굴해 낸 2000년대의 적(敵)이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처벌한다" "종교의 자유를 막는다"는 등의 반대 논리가 사실인지, 교리에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애초에 관심없는 일일 것이다.  


근본주의 개신교계는 모든 종교인을 대변하지 않는다. 예수의 길을 따라 약자와 소수자를 품는 교인이 주변에 많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최근 낸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 성명서에서 최형묵 목사는 “복음의 참뜻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환대하며 사랑을 이루는 데 있다”고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207


5. 


더불어민주당이 9일 의원총회를 열고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당론 법안으로 채택했다.


국회의 ‘상원’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은 법사위의 경우 체계ㆍ자구 심사권을 분리해 의장실 산하 입법조사처에 기능을 맡기도록 했다. 상임위와 소위에서 관행적으로 유지돼온 만장일치 제도도 다수결 원칙으로 바꿨다. 단 한 사람만 반대해도 법안 심사가 막히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224


6.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주일 강론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관련 발언을 하기로 했다가 실제 설교에선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홍콩 문제를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간주해 타협을 불허하는 중국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교황이 홍콩 관련 부분을 건너 뛴 것은 홍콩보안법 비판 여론과 간섭을 거부하는 중국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중국 정치 전문가인 로렌스 리어든 미국 뉴햄프셔대 교수는 SCMP에 "이번 강론 철회는 교황이 홍콩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내비치면서도 보안법 비판을 극도로 경계하는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1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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