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온라인팀 한 달 출근기
이번에 출근한 곳은 한 지역 신문사의 온라인팀. 일단 역사가 오래된 언론사에, 대주주가 돈 많은 건설사라 안심이 됐다. 10인 이하 사업장으로, 사장의 재량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던 직전 회사에 비하면 서로 최소한의 법을 성실히 지키는 갑을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신문사 '기자'로서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발 빠르게 제공한다는 것에 책임과 부담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글 쓰는 일이니 보람과 자부심도 느낄 수 있으리라. 높은 빌딩 꼭대기 층의 전망에 감탄하며, 신문사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달리 책상 위도 책장도 썰렁한 사무실로 들어가 배치된 자리에 앉았다.
면접을 볼 때 하루에 15개 정도의 기사를 쓴다길래, 놀랐다. 출판사에서는 적어도 2~3일에 거쳐 보도자료를 완성했는데, 하루에 15개 기사를 쓴다니. 그러나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해 보니 하루에 30개까지 기사를 쓰게 되었다. 하루 30개면 거의 15분에 기사 한 개를 쓰는 꼴.
주 업무는 트래픽을 올리기 위해 포털의 실시간검색어를 주제로 기사 쓰는 것이었다. 심심풀이로 실시간검색어를 훑어보긴 했지만, 하루 종일 실시간검색어 목록을 들여다보기는 처음이었다. 하루 종일 전 국민이 어떤 키워드를 왜 검색하는지, 기계적으로 기사를 쓰며 조금은 알게 됐다.
오전에는 주로 여러 할인정보들이 실시간검색어로 뜬다. 올리브영, 미샤, 나이키, 뉴발란스, 티몬, 위메프 등등. 갖가지 이벤트 시작 날짜를 어떻게 알았는지 오전부터 검색어 순위가 쭉쭉 올라온다. 특히 퀴즈를 풀면 혜택을 받는 이벤트의 경우 퀴즈 정답을 알기 위한 검색이 많아서 그 기사는 트래픽이 순식간에 올라간다.
연예인들도 하루 종일 실시간 검색어를 뜨겁게 달군다. 누가 결혼 발표를 했다던가, 부동산을 거액의 현금을 주고 샀다던가, 심지어 누가 방송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던가... 가지가지 이유로 실시간검색어 순위를 오르락내리락한다. 방송을 본 사람들이 연예인 이름을 검색하고, 온라인 기자들은 그 연예인이 검색된 이유를 역추적해 방송 내용을 기사로 쓴다.
솔직히, 내가 보기엔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내용들이 주로 실시간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일회용 정보, 일회용 유희. 나는 그것을 재빠르게 주워 부풀려 기사로 쓰고 내 이름을 달아 송출했다. 수많은 매체들의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최소 검색 페이지 3장을 넘어갈 정도로 많았다.
신문사는 광고 수입이 필요하고, 광고주를 설득하기 위해 트래픽을 높여야겠고, 이를 위해 이런 기사를 쓰는 일도 필요하다고 한다. 영혼과 일을 분리하면 난이도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종종 인턴 기간 최저시급으로 꾸역꾸역 생산하는 값싼 글에 한숨 나왔다. 일에 대한 보람이란,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터넷 공해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기대와 달리 이번 회사도 근무 조건이 내 상식과 맞지 않았다.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근로계약서를 끝까지 써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을 못 믿느냐며 섭섭한 말을 들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연장근무와 휴일근무 수당에 대한 기준이 매번 바뀌었고, 탄력근무제는 '상사마음대로근무제'가 됐다. 면접을 볼 때, 정규직 계약시 가능하다고 했던 연봉하한액은 상사 생각 외에는 근거없는 허망한 말이었다.
나는 며칠간 담당 업무가 아닌 업무를 '서포트'하느라 기사를 쓰지 못했고, 기사 조회수가 잘 나오지 못했다. 상사는 '서포트'는 평가 기준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무작위로 실검을 잡아서 쓰는 기사의 조회수는 어떻게 해야 지속적으로 잘 나오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끔 로또처럼 팍 터지는가 하면, 초라한 두 자리 숫자이기도 했다.
첫 출근한 지 한 달도 못 지나 업무 평가가 좋지 못하다며, 상사는 모든 팀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 일이 나와 잘 맞는 것 같으냐고,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일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맡던 업무에서 갑자기 배제됐다.
그후 상사와 면담을 통해 각자 원하는 바를 조율했다고 생각했다.
상사는, "적어도 이 정도의 성과를 원한다"고 했고
나는, "근무 조건을 명확히 해달라"고 했다.
면담 결과 나는 한 달 더 근무하며 상사가 제시한 성과를 만들기로 했고, 상사는 회사 측과 이야기해서 정규직 계약시 연봉하한액을 정확히 말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안돼, 상사는 나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월 평가서를 들이밀며 "이 일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전 면담에서 이야기했던 한 달이 이후 한 달이 아니라, 3일도 채 남지 않은 이번 달 한 달을 의미했다며.
첫 면접 때부터 난생 처음 해고 당할 때까지, 상사의 말은 실시간검색어처럼 매순간 바뀌었고
나는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책장과 책상이 썰렁한 사무실에서 실시간검색어처럼 사라졌다.
실시간검색어 치고는 수명이 너무 길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