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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Bigstar Aug 07. 2017

그의 옥스포드 셔츠와 개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  자식을 위한 희망의 유산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에 대적해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강해져야 해!"

식물처럼 순하고 곱게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살다 보면 세상이 약육강식의 규칙이 이끄는 거친 정글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세상에서 적응하여 잡아 먹히지 않고 잡아먹는 입장에 서게 하기 위한 방법을 후손에게 전수하는 것이 선대의 사람이 남기는 유산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에 대한 염려와 사랑으로 가르치고 키우는 방식에 악의는 없겠으니 누가 그 스타일들에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대물림이 행복과 불행을 가르고, 인간 삶을 어떻게 복잡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을 이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캐러밴이 모여 사는 공동체
아버지 콜비와 아들 채드


영화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은 캐러밴 몇 대가 모여서 공동체를 형성한 듯한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의 방식을 전수하려는 아버지와 그것에 저항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자식에게 전수하려는 아버지, 그 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공동체의 수장처럼 보이는 콜비(브렌단 글리슨)는 갱단처럼 절도 행각을 벌이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아들 역시 절도 행각을 벌이도록 강요한다. 자신이 맡고 있는 수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것 같다. 사회라는 울타리와 법망을 완전히 벗어나 절도행각으로 먹고사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환경에서 자라고 벗어나지 못한 아들 채드(마이클 패스밴더)는 이제는 그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적어도 그의 아들 타이슨(조지 스미스)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버지 콜비에게 저항하고 그 환경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했던 절도 행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만다. 



옥스포드 셔츠를 입은 채드
아들 학교 면담 


채드(마이클 패스밴더)의 옷차림의 변화는 그의 심리적 변화와 고통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 초반에 그는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하의는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기도 하고 셔츠를 풀어헤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단정한 옥스포드 셔츠를 입고 있다. 옥스포드 셔츠는 사실 그가 사는 환경이나 방식과 참 안 어울려 보인다.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들이 헐렁하고 캐주얼한 옷을 입는 것과 달라 그의 옥스포드 셔츠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그러던 그가 더 이상 옥스포드 셔츠를 입지 않는다. 아이의 학교에 면담을 하러 갈 때조차도 이젠 옥스포드 셔츠를 입지 않고 그냥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간다. 

옥스포드 셔츠는 아버지 콜비가 채드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삶의 방식과 다른 옷차림이다. 초반에 몇 장면 입는 것에 불과하지만 채드에게 옥스포드 셔츠는 아버지의 방식에 대한 저항이자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나 끊임없이 억누르고 강요하고 협박까지 하는 아버지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채드는 더 이상 옥스퍼드 셔츠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채드의 굴복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옥스포드 셔츠는 입지 않지만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비의 삶에 대한 저항, 새로운 삶에 도전할 기회를 아들 타이슨에게 넘겨준다. 어린 아들에게 채드가 선물한 개는 아직 어려서 자식이 없는 채드에게 자식의 기능을 하는 존재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자신도 아버지의 방식에 저항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 계기가 자신만의 가족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계기가 됐던 것처럼, 어린 아들도 자신이 돌봐야 하는 생명체를 갖게 된 것을 계기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동기를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채드가 타이슨에게 그 개를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단지 아들에게 생일선물을 주려는 아비의 사랑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내달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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