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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린 Oct 19. 2022

어쩌면 합법적인 유예 기간, 다들 무얼 하고 계신가요?

카카오-브런치 서비스 장애

10월 15일, 토익 시험을 보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친구한테 카카오톡 답장을 보내려는데, 도무지 보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핸드폰을 두어 번 껐다 켰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빈 화살표 표시만 뜨고, 노란색 1 표시가 안 뜨더라고요. 결국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카카오톡이 안 되어서 문자로 연락한다고요.


찾아보니, 그날 SK 판교 데이터센터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카오톡뿐 아니라, 카카오와 관련된 대부분의 서비스가 먹통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브런치 앱을 켜봤더니, 하얀 로딩 화면만 나왔습니다.


사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한 주에 글 하나는 꼭 올리자는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던 중이었는데, 합법적인 유예 기간이 주어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브런치 서비스 복구가 되는 동안은 글을 못 써도 죄책감이 덜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분명 글을 쓰고 싶었는데 서비스 장애로 쓰지 못했다는 좋은 핑계가 생겼잖아요?


물론 데이터 소실 및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걱정하시던 많은 작가님들의 마음에도 공감합니다. 아마 저는 철없는 햇병아리 브런치 작가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시험 준비를 열심히 안 해놓고 '우리 학교가 폭발했으면 좋겠다'라고 외치는 느낌이지요. 본인이 한 주에 글 하나를 재깍재깍 올렸으면 될 일을, 브런치 서비스 장애가 생겼다고 '아싸! 그때는 글 안 써도 된다!'하고 해방감을 느끼다뇨. 저는 작가가 될 자격이 없네요.


이 글을 브런치팀은 발견하지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작가 자격은 박탈하지 말아 주세요!




어쨌거나, 합법적인 유예 기간이 생겼습니다. 다들 무얼하고 계신가요?


아직도 브런치 메인 화면에는 '브런치 서비스 장애 공지'가 떠있습니다. 하지만 제 피드를 보니, 역시나 작가님들은 글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존경스럽습니다.


나름의 항변을 해보자면, 브런치에는 좀 더 완결된 글을 올려야만 할 것 같아 자꾸 업로드를 미루게 되더라고요. 블로그에는 그냥 바로 화면을 보며 글을 와다다 써서 올리곤 하는데, 브런치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글 프로그램을 켜서 빈 문서를 바라보고 있자니... 브런치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바로 쓰지 못한 채로 원고를 작성해야 해서 느낌이 달랐습니다. 한글 파일에는 브런치에서 쓸 수 있는 하이퍼링크 기능이나, 구분선 기능을 쓰지 못하니까요. 무엇보다, 브런치 화면을 보며 쓰는 그 감성이 없습니다! (네, 제가 바로 그 감성충입니다.)


그런 이유로... 마지막 글 올린 뒤로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저는 죄책감만 쌓아갔습니다. 라이킷 알림을 보며 사골 하나로 2주 넘게 계속 사골국을 끓여 파는 염치없는 식당 주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사골의 사용 기간이 원래 그 정도라면 죄송합니다.)


정확히 모르니, 다른 예시로 바꿔보겠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파는 식당 주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제 브런치에 방문해주시는 손님들에게 죄송하기만 하더라고요. 비록 사담이긴 하지만, 따끈따끈한 제 새 글을 보며 손님분들이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브런치 서비스는 언제쯤 완전 복구가 될까요? 상황을 보아하니, 아직은 불투명한 것 같습니다.


이 합법적인 유예 기간 동안 저는 신나게 글쓰기를 미루려고 했으나,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글이라기보단 사담에 가깝지만, 제 마음대로 글이라 명명하겠습니다.


오늘도 작가님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브런치 서비스 장애가 하루빨리 복구되기를 기원해보겠습니다. 복구되면 전 다시 괴로워지겠지만... 글 쓰자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글을 써야겠죠! 브런치 작가 합격을 간절히 바랄 땐 언제고, 이러고 있다니... 아주 되바라졌습니다.


정신 차리자, 김그린! 아자아자!


[표지 사진 출처]: Photo by Simon Berg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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