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9. 03:08경 10년 전 고찰
경시하고자 하면 한없이 하찮아지고,
진중해지고자 하면 쓸데없이 편협해지는 게
중도란 말처럼 어려운 말도 없는 거 같다.
적당히 적절히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모든 쪽을 고려해야 하는 것.
그래서 어려운 것인지, 관점이라는 게 방정식과 같아서 같은 값을 넣어도 결과가 다른데 서로 자기의 결과가 옳다고 주장을 하니까 끝이 없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복잡하게 만드는 건 사람의 특기 같다.
답은 정해져 있고 의외로 문제는 간단한 건데
서로 주장하는 바에 힘을 더하려고
오염된 무언가를 가지고 온다.
거봐라 내가 맞지?
라는 말과 함께.
그다음부터는 의미 없음이 분명한데
이런 일에서는 또 지기 싫은 것도 사람이고
어떻게든 우위를 점하려고 추악해진다.
그런 시점이 되면 항상 나는 도망치기 바빴던 거 같다.
아 시발, 노답
말 안통함.
뭐 이런 식으로, 적절히 누군가가 바라는 무언가를 서로 가질 수 있도록 조정하는 타협.
타협에는 능하지 않다 솔직히.
가질 거면 다 가져야 하고 내줄 거면
확실히 내줘야 한다.
깔끔해야 한다. 물론 내 기준에서,
뭐였을까? 그때 그 상황에서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반대로 내어 줄 수 있는 상황에서는 뭘 내어줘야 했을까?
가지고 싶었던 것은 어렴풋이 알 거 같지만
내어 줄 것은 내어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감도 잘 안 잡힌다.
결국, 내가 했던 선택은 상황을 포기하고
사람을 포기하는 방법이었다.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잘했다고 생각도 안 든다.
확실한 건 그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단 것뿐이지.
조금 더 웃겨보자면 사실 크게 후회는 안된다는 게 크게 웃긴 점이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를 이토록 오랫동안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에 이런 일이 있을 때
같은 결과를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수용하는 놈이 노답이라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고집하고 싶고
욕도 조금 하고 싶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 씨발 뭐 했냐? 여태 그 나이 먹고
뭐 이런 식으로도 얘기하고 싶고
'병신 염병하고 자빠졌네'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버리면 나는 영원히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게 뭔지 알고 싶다.
내가 알았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이 뭔지 알고 싶다.
하지만 납득할만한 무언가가 있을 거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가 그걸 알았어야 할 시점과 뚜껑이 열린 시점이 달라서 그 무언가는 더 흐려진다.
분명히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있을 건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허상과 실상을 구별하기도 힘든 거 같다.
어렵고 답답하다.
단순 호기심이 된 지금 이 시점에서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긴 하다.
“내가 그렇게 싫었냐?”
아...
이래선 똑같은 건가?
역시 어렵군
어려운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