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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허물인생 18화

허물인생(18)

바람

by 강도르

1. 쉼표


어릴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의 굵직한 사건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온전히 기억과 부분 기록된 글들을 되짚어가며 글을 쓴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나만 알고 있는 사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는 게 생각보다 낯부끄러운 일인 데다가, 그것을 전력을 다해서 한다는 것이,

'민망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행동'이라서 그런지 저항감이 굉장히 크다.


'나를 바로 알자', '나를 되돌아본다'는 취지로 시작한 일이지만 객관적으로 쓰는 게 어렵고,

글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쓴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

이것은 온전히 주저리주저리로 시작한 글쓰기였던 습관이 만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나? 글쓰기 실력을 갈고닦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시간 순서대로의 글은 한 번만 쉬도록 하고, 생각을 옮겨 적는 글을 써보기로 한다.


2. 바람


이번에 얘기해 보고 싶은 것은 '바람'이다.


인간의 삶의 근간이자 기둥이라고 생각되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사람은 그 원동력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하여 움직인다. 하지만, 이 '바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좀먹기도 한다.


그런 상황을 보고 '뒤틀린 욕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의로 시작된 일이라고 해서 모든 것들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없는 것처럼.


이 마음이라는 강한 원동력을 지닌 바람은 상황을 뒤틀리게 하거나, 현실과 맞물려 강한 후폭풍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 마음의 원동력이라는 자원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것을 고민하는 일이 요즘의 주된 과제였다.


강한 마음은 그만큼 강한 의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의지의 소용돌이 속에는 타인이 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항상 그 의지로 인하여 타인이 피해를 받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주저리주저리 길게 썼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조금 쉽게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가스라이팅'



극단적인 예시를 가져왔지만 넓게 분류하면 내가 가진 '바람' 속에서 타인이 말려들게 되어 피해를 입는다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런 고민 속에서 가장 최우선 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나의 바람과 타인의 바람이 같은 것인가?'였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인간관계를 가르기에는 사람의 마음속은 너무나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그래서 나의 '바람'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록하고 생각해 보고 싶다.


3. 가장 오래된 바람.


간절함이라고 부를 만큼 가장 강력한 바람은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농구를 잘하고 싶다'였다.


운동을 평소에 열심히 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탓에 운동을 잘하는 것에 대한 동경이 컸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순수한 바람이었던 것 같다.


가장 순수하면서도 단순했던 이 바람은 내 삶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이 바람으로 인하여 얻는 이해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간단하고 명료했다.


농구를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과제였기 때문에 이걸로 타인과 부딪히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간혹, 농구를 함께하는 친구들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위의 사진과 같은 문제였기 때문에, 넓게 보면 이것도 서로의 바람에 의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농구를 즐기고 싶다는 같은 바람에서 나온 갈등이었기 때문에, 인내와 배려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맞다.


순수한 바람은 나를 즐겁게 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간혹 그 바람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거나, 열등감이 나를 삼킬 때도 있지만,


잘하게 되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기다림의 문제였지 타인과의 갈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4. 타인과의 이해관계


이 '바람'이라는 것이 타인과의 이해관계에 놓여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할수록 상대방은 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 갈등이 일어난다. 이것을 서로의 의지의 대결로 가게 된다면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인간 사회에 전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


모두가 바람을 이루기 위하여 의지의 대결로 넘어가거나, 흑백논리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런 바람의 대립이 있을 경우는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이 본질을 통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뒤틀린 욕망이 상황을 꼬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을 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내 마음을 다스리기가 조금 더 수월했다.


젊은 시절의 짝사랑이 그랬다.


대학생 때, 너무 좋아했던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때는 하루에 한 번 학교에서 마주치는 것만으로 큰 행복이었고, 그 상대방 여학생도 나를 볼 때마다 즐거워 보여서


나와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마음을 고백했을 때 그 여학생은 굉장히 난감해하고 곤란해했다.


나의 바람과 같지 않았다.


상대방이 내 맘과 같지 않다면 이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 뒤틀린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사실 이게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바람을 강요하는 것을 미화한다고 하면 조금 어려운가?


이 드라마를 예를 들어보자.

벌써 약 15년 전의 드라마인데, 나는 정말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다시 시청할 수 있는데 이를 보면서 생각을 해봤지만


이거 '돈 많은 자의 가스라이팅 그 자체 아닌가?'


물론 창작물은 창작물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맞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창작물에 자신을 이입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수천 가지 행동들을 반복해서 하지만 아무리 멋진 말로 꾸미고 포장한들 본질은 강요이고 스토킹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어디까지 행동하는 것이 정당할까? '


정말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본질을 깨닫곤, 그때 그 여학생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여학생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나를 한없이 투명하게 하는데 노력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학생이 마음을 돌려 나를 돌아봐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국 난 그 여학생과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한 채로 각자의 길을 갔다.


다시 한번 돌아봐도 날 것 그대로의 20살 남성은 정말 멋이 없다.


멋이 없는 정도로는 끝나지도 않고 다소 민망할 정도로 낯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 나를 부풀려봤자 결국에는 초라하게 남은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이 가장 최우선적으로 연습해야 하는 것이 나를 바로 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배려와 나를 포장하기 위한 행동을 그만두고, 대화를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나는 투박했고 말이 거칠었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솔직하단 말로 배려하지 못했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희망과 동경을 가질 수 없었던 상대방은 현실을 가르쳐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현실을 끌어안은 채 나를 받아들이기를 반복하던 나는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가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모습을 연기하듯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


이게 내가 타인과 바람이 같지 않은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5. 고찰


나의 바람과 상대방의 바람이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간관계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수식화하거나, 공식화해서 체계화해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들어오는 입력값이 정확하지 않고, 경험상 오류 값이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경험상, 오해하지 않는 경우가 더 드물지 않은가?


하물며, 서로가 오해한 채로 있다가 결과적으로 괜찮았던 경우도 허다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높이가 같지 않고, 인간의 언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는 공감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공감하는 말 '카카오톡으로 중요한 대화는 하지 마라'


서면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거듭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지만, 결코, 사람들은 거듭 읽지 않고 반드시 오해한다.


간단한 이야기조차 카카오 톡으로는 오해하게 되어있다.


옛날에는 웃긴 이야기를 듣고 "정말 재밌네 ㅋ"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했는데, 이게 상대방 입장에서는 '왜 비웃는 거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간단한 예시들이지만, 위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우리는 기본적으로 뒤틀려있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고찰이 필요하다.


바람을 이루고자 할 때는 고찰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본질에 관하여 고찰하고, 상대방과 다시 한번 대화하여야 한다.


그 본질이 상대방과 나의 바람이 같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나의 바람이 적절하지 않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흐름은 나에게로 온다.


나에게로 온 흐름은 나에게 미래를 제시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감정으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아까 잠깐 언급했던 짝사랑.


나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는 물러났다.


하지만, 지금 내가 짝사랑하던 그 여자는 지금 내 아내가 되었다.


딱히 아내의 마음을 얻으려고 드라마처럼 지속적인 노력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현실의 흐름을 받아들였고, 우연한 기회에 나와 아내의 바람이 일치했던 순간이 있었을 뿐이다.


모두가 이렇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운명의 장난이란 말도 지금 상황에서는 재밌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의 내 바람은 순수한 바람이었고 간절했다.


그만큼, 상대방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닿았을 뿐이니까.


우리 모두의 바람은 소중하다. 집착해서 뒤틀리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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