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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허물인생 19화

허물인생(19)

대한민국 육군 장교 후보생

by 강도르

대한민국 남자의 필수 코스

그러니까 2010년.


친구들이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나서, 1년이 지나고서야 나도 드디어 머리를 짧게 깎았다.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군 입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나는 학군단을 통하여 입대를 했다.



학군단은 4년제 대학교에서 2년간 일반적인 대학교 생활을 하고, 3학년과 4학년 나머지 2년을 장교 후보생의 신분으로 생활을 한 후, 장교로 임관을 하는 제도이다.



2010년, 1월 약 3주 동안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나는 학군단의 장교 후보생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 기질이 있었던 나는 학군단 생활에 자신감이 있었다.


체력훈련도 게으르게 하지 않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리는 나를 위한 무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군단이라는 곳과 군대를 만만히 본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학군단에 입단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지우는 일이었다.


2345번 후보생.


2010년에는 내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는 호칭이었다.



학군단에서는 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규율과, 암묵적인 내부 규율이 있었다.


암묵적인 내부 규율이라고 하면 어둠의 결사대 같은 느낌이겠지만, 짧게 말하면 악폐습이었다.


학군단 4학년생(이하 2년 차 후보생)들이 학군단 3학년생(이하 1년 차 후보생)들을 통제하고 군기를 확립하기 위한 압도적인 효율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지금 학군단을 경험을 해보진 않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있을 리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악폐습이 많았다.


대학교 내에서 큰소리로 충성!이라고 외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단복을 입은 후보생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겠지만, 오히려 이런 것은 외부적으로 보이는 규율이기 때문에 수월한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직 이름과 얼굴을 알지 못하는 60명이 넘는 선배들을 기억해서 거수경례로 인사를 해야만 했다.


대학교라는 불특정 다수가 왕래하는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인물에게 거수경례로 인사를 해야 했고, 혹여나, 선배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사를 하지 못하는 날에는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후배들을 알아보고 인사를 먼저 해주는 선배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길을 가고 있다가 불러 세워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면박을 주는 선배들은 오히려 천사나 다름없었다.


'사주경계'라는 이름의 악폐습이다.


이게 두려워서 1년 차 후보생들은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극구 꺼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알지 못하는 이러한 악폐습에 마일리지라도 있는지, 월마다 불려 나가 학교에서 가장 으슥한 곳에 모여 얼차려를 받는 것은 기본이었고, 선배들의 자치 근무자 실로 불려 가 모욕적인 언사로 불호령을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생활의 연속으로 인하여, 얼굴도 잘 모르는 동기들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전우애로 굳게 단결했다.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아직까지 살면서, 2010년보다 힘들게 지냈던 기억은 잘 없는 것 같다.


내 하루를 감시당하는 느낌이 나를 숨만 쉬어도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군 단복을 다림질해서 군사학을 듣는 것도, 촌스러운 학군단 체육복을 입고 체력단련을 하는 것보다도, 내 행동이 누가 되어 동기들을 괴롭히게 할 것 같은 그 공포감과 압박감이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때는 너무 군의 장교로 임관하고 싶었다.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는 그 멋에 취해서 장교가 되고 싶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 글러먹은 엘리트주의 또는 선민사상의 근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제도는 아니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프로파간다에 당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긴 어렵지만, 무언가 취해있기 좋은 시절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장교로 임관한 나는 정말 최고로 멋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취해있던 시절이었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동기들은 60명이었나, 50명 가까이 됐던 것 같다.


모두가 친하게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학군단에 들어와서 온전히 혼자였고, 같은 과에서 온 동기도 얼굴만 알았지 전혀 친하지 않았던 탓에, 두루뭉술, 어영부영 그렇게 알아가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과는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학군단 출신 장성이 되겠다는 그런 야망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서 멋있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학군단에 들어온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였기 때문에, 이해관계로 동기들과 틀어질 이유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동기들과 어울리는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딱히 각별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기들은 모두 나이가 같아야 했지만, 당연하게도 복학생이나, 재수생 등 다양한 이유로 나이가 다양했다.


하지만 학군단에서는 동기라는 이유로 모두가 동등했고, 나이로 군림하려 들거나, 이를 무기로 삼는 존재는 압도적으로 도태시켰다.


그때 당시에는 이게 맞다고 생각했고, 나이를 챙겨줘야 할 이유는 느끼지 못했기에 학군단의 위와 같은 요구는 나에게 어려울 게 없었다.


물론 내가 제일 어리기도 했고, 나이가 조금 있는 입장에서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요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입장에서는 사실, 나이라는 편견을 제거하고 보면 사람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고 어차피 다 같이 늙어가는 입장에서 나이로 나누고 그런다면 인간관계에 불균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제일 어린 내 입장에서 좋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하나의 예를 들면, 나이가 제일 많았던 연장자와 친하게 지내면서 이 나이 문제로 갈등이 제법 있었던 터라, 나는 곤란하진 않았지만 그 연장자는 꽤 곤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나이를 자꾸 대접받으려고 하는 마인드는 나를 심하게 거슬리게 했고, 결국 크게 한번 싸움이 있었다.


주야장천 길고 긴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국에 내가 설파하던 주된 논리는 '꼬우면 빨리 들어오던가?'라는 이야기였고, 내가 아무리 기분 나쁘지 않게 전달하겠다고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나이 가지고 그러지 마라는 이야기를 계속했었다고 한들 나이 많은 입장에서야 이런 갈등이 있는 시점에서 이미 기분이 나빴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이 동기와는 전역을 하고 나서도 몇 년을 사이좋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이 나이에 대한 입장 차이로 결국 소원해져서 이제는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그놈의 나이대접해 달라는데, 좀 대접해 주고 적당히 존중하고 잘 지낼 걸이라는 생각이 크지만, 그때 당시에는 '진짜 친구가 되었는데 나이가 뭐가 중요한 거냐?'며, 친하게 지낸 사이인데 이걸로 자꾸 싸울 거면 연락하지 말라고 아득바득 물고 늘어진 내 잘못이 크겠지.


그렇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아마 또 저럴 거 같다.



동기들 간에 있었던 갈등의 작은 사건의 예지만 이런 갈등은 웃길 정도의 이야기가 많다.


사실, 정말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훨~씬 많지만 여기서 겪었던 부조리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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