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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허물인생 21화

허물인생(21)

만나서 부딪힌다.

by 강도르

겨울이 다가왔지만 눈이 녹듯이

입영훈련이 끝나고 나서의 학군단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힘든 입영훈련을 극복한 후배들을 격려하고자

아니, 이제 진심으로 함께할 후배들이라고 인정하듯이 선배들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졌다.


지금도 사실 입영훈련을 마치고 왔을 때 선배들이 단체로 불러주었던 군가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있었고 뜻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배들이 전반적으로 부드러워진 만큼 동기들의

사이도 대체로 완화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중도적인 입장인

나만의 기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군단

생활에서 전반적인 흐름은 거스를 것 없이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에는 다양한 문제가 직면하기 마련이다.


룸메이트


생활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집을 떠나 생활하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한 적은 없고

하숙과 자취를 번갈아가면서 했다.


사람과 사람이 섞여 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친구가 우리 집에 하룻밤 묵고 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살았던 룸메이트들은 매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생활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이유로 자주 방을 옮겨 다니곤 했었다.


대체로 1년이 안되게 옮겨 다녔던 것 같다.


첫 번째 룸메이트와는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방이 문제였다 구축 주택에서 외풍이 있는 방


겨울이 아님에도 너무 추웠다.


추위가 지속되니 행동이 움츠러들었고, 자연스럽게 교류가 줄어들었고 가뜩이나 바깥으로 도는 성격이라 더 소원해졌던 것 같다.


2번째 룸메도 그랬다. 사이가 틀어지진 않았지만


사이도 좋았고 잘 지냈지만 둘 다 밖으로 나돌아서 더 부딪힐 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군대 때문에 결국 떠나보냈고,


세 번째 룸메이트는 폐쇄적이었다.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잠을 자기 힘들 정도였다.



학군단 생활을 했을 때는


네 번째 룸메이트였다.

전국 일주를 함께 했던 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활에 있어서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었던 것 같다.


사이가 좋았던 만큼,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원인은 나의 편협한 관점으로 인한 성격적 결함이라고 본다.


생각이 참 가벼웠고 어리숙했음을 느낀다.



사람이 싫어지는 과정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딱히 큰 계기가 있어서 사람이 싫어지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나머지는 그냥 나중에 갔다 붙인 자질구레함일 뿐이지.


처음에는 가볍게 맥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웠다.


삐걱거린 것은 생활 패턴의 문제였다.


학군단 생활은 1주일 내도록 아침 일찍 기상하는 것을 전제로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보통의 대학생은 아침 일찍 기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로 다른 생활 리듬이 각자의 삶에 피해를 줬다.


방이 나눠진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만 해도 밤늦게까지 깨어있던 형이 야속했다.


당장 방에서 나는 소음이나 불빛보다는


그때 당시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상태가 나는 무서웠다. 지각을 하게 되면 동기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가고, 심지어 꽤나 먼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이런 피로감들이 쌓이다 보니 뭔가 하나라도 피로가 될만한 것들이 줄여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 내 마음은 탓할 상대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의 작은 지적은 서로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가는 길에 만난 바람은 왜 이렇게 차갑기만 한지, 기분은 먹먹함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형과의 균열은 전국 일주 때 겪었던 갈등과는 결이 달랐다.


사람이 싫어지니 일단 대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고


갈등 해소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시간도 부족했다.


나중에 서술하겠지만 동아리 관련 문제도 얽히다 보니 감정의 조절이 쉽지 않았다.


룸메이트이면서 동아리 선임 운영회이자 학군단이었던 나는, 후임 운영회이자 비학군단 그리고 나이 많은 형을 이해할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동아리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 후배들과 마찰이 많았던 형은 신경이 매우 날카로웠고, 나 또한 인생에 처음 겪어보는 고난으로 여유가 없었다.


오래간만에, 친한 형들과 맥주 한 잔을 하던 그날 밤


결국 서로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일까지 생겼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리석었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그 형은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내가 흥분해서 달려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흠을 직면하고 혼란스러웠다.


길게 나열했지만, 한마디로 부끄러웠다.


말이 안 되니까 주먹을 썼다는 사실.


싸움이 끝난 후 금방 그 형과는 화해를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기억도 흐릿하지만,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그 길로 그 형과는 사이가 서먹해졌고,

나는 그 형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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