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혀 마모된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이끄려고 하는 성질이 강했다.
형들과는 재미있게 지내기도 했지만, 강한 자기주장은 다른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좋았다.
그래서 알코올이 들어가게 되는 날은 꼭 형들이랑 부딪혔다.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동아리였던 탓에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특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안 좋은 방향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군대처럼 한다 이 말인데, 그 꼴이 참 보기가 싫었다.
대학 때 만난 형들이 군에서 막 전역하고 나선지라, 지금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때는 나에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본질이 어긋나는 행동을 거스르는 것도 너무 싫었고, 저런 영향력에 수긍하는 것도 납득이 안 됐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학군사관후보생의 신분이었을지언정,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고, 군대와 밖에 나와서의 생활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더 컸던 것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위치를 분명히 하고 싶어 했다. 나이가 강한 영향력을 가지는 사회에서, 나이로 억누르는 것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자리를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날카로웠던 학군단 생활과,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고향 같았던 학교생활은 철저하게 이등분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후배들과 동생들은 나를 곧잘 따랐다.
지금에야 그냥 겉으로만 나를 좋아한다고만 하고 뒤에서 어땠는지 야 잘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의 생각으로 나를 정말 잘 따르고, 많은 조언을 구하곤 했던 것 같다. 해결사가 된 느낌이 좋았다. 지금도 아직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내가 조금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몸에 많이 베여있었다.
내가 무언가 주도적으로 상황과 갈등을 해결하는 게 너무 좋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많이 부리곤 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무언가 상대방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큰 기쁨이었던 것도 있다.
갈등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피하지 못하는 갈등에 피하거나 숨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언가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싸움도 필요하다면 했었다. 큰 갈등 후에는 반드시 반성이 따라오기 때문에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도 됐기 때문에, 하지만 기본적으로 말발이 좋았기 때문에 언쟁에서 져본 적은 크게 없다.
그래서 엘리트주의, 선민사상 같은 것에 쉽게 감화됐던 것 같다.
특별한 내가,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행동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우월한 행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이라 생각했고, 그렇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쉽게 생각하면, 최근 재밌게 봤던 드라마 '신병'에서 등장하는 중대장 오승윤의 모습에 비유하면 그때의 내 모습이었던 것 같다.
옳은 일을 하는데 방해를 하는 존재에 대한 혐오감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것 같다. 그래야만 나 또한 행동을 더 바르게 할 수 있었고, 누군가를 비난하지 않고는 내가 특별해지지 않았다. 정말 어린 생각이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굉장한 동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얕은 정의감이었지만, 그만큼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정의의 사자가 악당을 타도하는 것 마냥 말이다.
멋진 사람이 되길 갈망했던 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왕관을 찾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멋진 왕관 찾기.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대학교 3학년이 된 나는 아직 어렸지만 학교에서는 이제 선배의 위치인 데다가, 어떻게 보면 많은 관문을 지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눈앞에 대학교 4학년이 되는 것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계획을 했었다.
학군단에서는 자치 근무자 근무를 희망을 했었고, 동아리에서는 회장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걱정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경험을 거쳐, 견뎌내는 힘을 키운 나는 부딪혀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을 했다.
많은 갈등과 역경들을 겪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나를 기억했고, 그 기억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단단해진 만큼 완고해졌지만, 그 완고함이 깨졌을 때는 멋진 모양으로 마모되어 갔다.
내가 그리던 내 모습을 찾아가면서 여러 가지 왕관들을 써보기로 했다.
구체적이지 않았던 내 계획은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마모시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