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의 무게
봄이 시작됨과 동시에 태권도 동아리 회장 활동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나를 강력히 추천하거나, 나라는 사람을 추대한 것이 아니었다.
이익이 없고, 어떤 명예도 없는 자리의 최후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참한 왕관이었다.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다.
나의 동아리 생활은 희로애락이 분명했던 만큼,
의미가 있었고 소중한 것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았다.
다들 즐겁게 생활을 해놓고, 왜 이제 새로운 신입생들에게는 자신의 즐거웠던 기억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도 마땅히 그런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 자리가 굴러다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작년에 신입생으로 생활했던 후배들이 이번에 함께 집부진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운동 활동과 부회장을 담당할 수련부장
동아리 운영자금을 책임질 총무부장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사람들을 섭외하는 섭외부장
동아리 행사를 책임지는 기획부장
동아리 소식지 등을 전담하는 편집부장
집부진 구성은 위와 같았다.
즐거운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기 위해서 연초에 집부진들을 불러 모아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어려운 일을 한다. 굉장한 난제가 아니었나 싶다.
집부진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는데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표정이
여긴 어디 ...? 나는 누구....?
지금에서야 당연히 그런 표정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좀 더 의욕적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이 아까운 시간에 어째서 이토록 수동적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집부진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볼 시간과 하고 싶은 것을 적어서 제출하게 했지만, 대부분 백지거나 짤막하게 한 줄 정도씩 제출했던 것 같다.
이건..... 아마 나 혼자만의 힘든 시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팀을 꾸릴 수 없다는 직감이 들었고 그것은 곧장 분노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멋진 팀은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독선적이었던 만큼, 세상은 비뚤게 보였다.
그냥 그런 현실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젊은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를 짓누르는 현실을 버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뒤집으려고 했다.
멋진 팀이 없다?
그럼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신입생의 생각으로 돌아가서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어떤 동아리가 됐으면 했던가?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갔다.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욱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라고 단정 짓고 나는 생각을 했다. 본질을 벗어나진 않지만,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이 본질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왕하는 동아리 생활 멋있고 재밌게 하자, 올해만의 무언가 특별한 것이 없을까?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나니 대략적인 계획들이 들어섰다.
특색 있는 도복 만들기
모두가 가고 싶은 MT
다른 동아리와의 교류
내가 신입생 때 못해서 아쉬웠던 것들
태권도 운동의 전문화
동아리 커뮤니티 활성화
여러 가지들 계획들을 떠올리고 나니 어떻게 실행할지가 생각났다.
예전에 동아리 운영을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실행하는데 주저는 없었다.
돈이 어떻게 굴러갈지, 회원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 회비를 걷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해보니 굉장히 현실적인 선에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여러 부서로 나누어 놓았던 동아리 부서들의 일을 나 혼자서 다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독한 사람이었다.
하나씩, 하나씩 계획들을 실행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즐거웠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즐거움과, 신입생들이 즐겁게 운동하며, 나 또한 즐겁게 태권도를 즐 길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재학생들의 항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두 가지 부류의 말이었는데,
첫 번째는 왜 이렇게 죽어라 운동 위주로 동아리가 흘러가느냐?
두 번째는 왜 선배들이 해왔던 방식들을 바꿔 가는 것이냐?
이런 종류의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고려해 볼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저 때의 나는 완고했다.
운동 동아리가 운동 위주로 흘러가지 않으면 무엇을 중심으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았고, 전통을 왜 존중하지 않느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나는 동아리 회장 자리 앉자마자 애초부터 존중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소중하고 애틋한 동아리였다면, 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동아리 회장 자리가 제안이 오기 전에 본인들이 회장을 했었어야지, 애초에 내가 회장을 할 기수가 아니었음에도 본인들이 책임을 다하기 싫어서 결국 건너뛰고 나에게까지 온 동아리 회장직 아니었나?
책임을 다하기는 싫고, 본인들이 가꿔놓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변하니까 기분이 나쁘다는 것 아닌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런 선배들의 항의를 논리로 박살을 내버렸다.
그럴수록 선배들은 그래 너 잘났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식으로 나와 나를 더 못마땅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강성의 사람이라서 그런지 더 이상의 잡음은 없었다.
나에게는 조금 더 인간생활의 다양성에 대해서 납득할 만큼 좋은 말주변을 가진 어른이 필요했지만, 다들 젊을 때라
부딪히기만 반복하는 소모적인 언쟁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너무 아쉽다.
물론, 내가 신입생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동아리를 꾸리기도 하고, 학군단 생활 그리고 졸업논문 준비에 임관 준비까지 하려고 하니 몸이 하나로는 너무나 부족했고, 그런 바쁜 와중에 내가 동아리 회장까지 하게 된 것은 오로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선배들 때문이라, 선배들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했던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