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의 끝
전역을 하는 해가 다가와서 여러모로 어수선해졌다.
동기들은 군에 남아 있을지, 전역을 할지로 고민이 많았다. 전역을 생각하니 모든 것들이 귀찮아졌다. 아마 이게 일반적인 병역의 의무를 치르는 사람이 이런 기분일까?
전역을 하고 바로, 경찰 시험을 치르고 싶어서 틈이 날 때 간간이 공부를 했다.
분명히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상황을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하루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군 생활이 천국이나, 동물의 숲 같은 화기애애한 곳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군 생활이 마무리할 때쯤은 모두와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모두가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모두가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저마다의 단검을 마음에 품고, 서로를 허공에 그려 넣고 찌르고 있었다.
내가 상관이 없는 곳이라 생각이 드니까 이곳에서의 인간관계들이 보였다.
내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여기는 이미 그런 곳이었다.
아니, 사실 인간이란 생물이 그런 것 아닐까?
인간을 찬양하며 좋아하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싸늘한 현실이었다.
전역을 하기 전까지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가 않다.
굉장히 복잡한 사건이 있었고, 언젠가 이 사건에 대해서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 것 같기 때문에 쓰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이 언급하기 싫은 사건이 끝나고 나는 전역이 다가왔다.
전역하기 전까지, 검열과 비상상황으로 인해서 정말 전역하기 전날까지 일을 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중대장은 나보고 '너 전역 못해 내가 몰래 연장 신청서 적어서 제출했거든' 같은 말을 하곤 했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중대장처럼 따뜻한 사람이 있어서 군 생활을 하는데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이 쇠창살 같은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루하루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뜨거운 여름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전역을 했다.
명예로운 전역을 축하한다며, 여러 가지 기념품 등을 받았지만 내게서 빛바랜 검은 베레모는 더 이상 명예가 아니었다. 내가 실패한 것 같은 그런 느낌 때문에, 나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도망치듯이 독신자 숙소의 짐을 싸고, 바로 고향이 아닌, 새롭게 공부를 하기 위한 곳으로 향했다.
실패를 만회할 생각에 말년 휴가 때부터 타지에 방과 학원을 계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 찬가를 좋아했고, 위대한 행동을 찬양하기만 했다.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하면 맹렬히 비난했고, 그런 행동들과는 섞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무결점으로 있고 싶었던 내 모습들이 결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내려놓고, 조금 더 그들과 함께 굴렀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훈련들은 내게 너무 즐겁고 신나는 것들이었으니까 더욱 신나지 않았을까?
내가 그들의 행동을 깎아내리고, 멸시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도 나를 그렇게 보지 않았을까?
원리와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그런 생각과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어두운 부분의 원인에 대해서 알게 된 사건도 있었다.
나는 부대 밖에서 선후배들과 함께 있었고, 선배 후배들과는 사이가 돈독했다.
하지만 훈련을 나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선배 후배 사이는 굉장히 복잡했다.
그들과 친해지려고 했지만 막상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남일인 양 대했던 내 모습들이 생각났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날의 일들은 오롯이 나의 실패가 맞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 안에서의 부조리와 경직된 생활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들도 어린 나이에 국가의 부름에 이끌려 온, 그런 사회에서 고통받는 피해자였을 뿐, 물론 옛날부터 그런 좋지 않은 악폐습 속에서 그들 스스로 자정작용을 거쳐 나아진 모습이었겠지만, 분명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후배를 때리는 것이 당연했던 생활이라고 배웠던 그들이 후배들을 때리지 않고, 싫은 잔소리긴 했지만 그래도 후배들에게 손을 들어 때리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을 나는 조금 더 존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때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막내 하사들이 상사가 되고 부대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도 가끔 나는 부대로 놀러 가는 꿈을 꾸곤 한다.
그때 함께 군 생활을 했던 그들이 전역을 한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가끔 부대로 놀러 가면 그들이 새로 만든 부대 분위기를 구경하는 꿈을 꾼다.
나에게 큰 실패와 상처를 남겼던 곳이었던 만큼 사실, 내가 동경해오던 그곳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다.
이제는 그 옷을 벗고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한 명의 국민으로 특전사가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최정예 특수부대로써, 그 이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