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불안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리 잡은 곳은 지방의 대도시였다. 학원을 곧바로 등록을 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았고, 공부와 운동을 균형 있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생각보다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처음 학원에 등원했을 때의 분위기는 굉장히 어수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들은 조용했고, 삼삼오오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대체로 이야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이대도 다양했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시험을 잘 치면 합격이니까, 책을 열심히 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법학과를 졸업했던 나조차도 생소한 단어들과 기초가 부족했던 영어 때문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요령 있게 효율적으로 학습을 하는가가 중요했지만, 나에게 그런 요령은 없었다.
마냥 열심히 책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글자 수가 빽빽한 이론서들을 열심히 읽었지만 읽는 족족 머릿속이 아니라 허공으로 날아가기 바빴다.
지방 도시에서의 생활은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던 같은 과 동기였던 친한 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시작했다.
친구도 학교를 졸업을 해서 같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로를 많이 의지하며 좋은 학습 동반자가 될 것을 기대했다. 처음에는 학원도 같이 다니면서, 쉬는 날에는 종종 같이 맥주도 한잔하면서 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었다.
학원은 하루에 한 과목씩만을 수업을 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빼곡한 수업을 진행했었고, 하루 종일 한 가지 과목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다가 하루 만에 공부하게 되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날 그날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원을 마치면 곧장 인근에 있는 지방 대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밤늦게까지 그날 배웠던 것을 복습했지만, 복습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양이었다.
하루하루 생활을 해나가면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헬스장을 등록한 후 운동을 하고,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대학교 도서관에서 자습을 하는 루틴을 만들었지만 이 루틴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큰 거리낌이 없었다.
아니 거리낌은커녕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내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굉장히 충만감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내 친구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성실함을 크게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이 성실함이라는 것은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목표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간절함에는 언제나 성실함이 동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이었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이 있다.
세상 사람들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요.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 대충 하는 사람 정말 많다. 그냥 꾸준히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나이가 한참 먹은 지금에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정말 공감하는 말이다. 나에게 몸에 배어있는 성실함은 생각보다 가지고 있는 사람 없었다.
나와 친구는 애초부터 목표를 바라는 간절함의 정도가 달랐다.처음에는 함께 헬스장을 같이 가던 친구가 헬스장을 등록을 하지 않고,학원도 한 번씩 씩 안 오게 되는 날이 생기더니, 어느새부터인가 학원은 나 혼자 다니고 있었다.
친구에게 요즘 무얼 하는가 물어봤더니, 여자친구가 임용 준비를 한다면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했지만, 친구가 공부를 하는 시간은 더 보기 어려워졌다.
분명히, 시작을 할 때는 학교에서 함께 경찰이 되기로 했을 때는 그렇게 간절할 것 같았던 친구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는 여자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집에도 자주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고독함과 직면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머릿속으로 스스로 궁금해하는 질문을 많이 떠올렸고, 그런 질문에 대한 상상들을 하면서 고독함을 즐겼던 것 같다.
고독함에는 필연적으로 외로움이 따라오지만, 이런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침마다 도시의 도로를 달리면서 생각들을 정리했고,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등산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가기도 했다.
몸의 피로가 많이 누적된 날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감상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했다.
고독함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금방 금방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많은 벽에 부딪혔다.
고독함이 주는 것은 굉장히 다양했다. 때로는 부푼 희망으로 하루를 벅차게도 만들었고, 때로는 출구가 없는 것 같은 터널을 걷는 것과 같은 절망감을 선사했다.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감정 변화는 심화되었다.
지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를 찾아오는 손님도 생각보다 많았다.
원래 이 도시에서 살고 있던 친구들을 만날 일도 많았고,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했던 것들을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풀어내기도 했다.
시간은 흐르고, 나를 가둬가는 벽은 높아만 졌다.
성실함이라는 미명하에 멍청한 일을 열심히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과 당장에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의 반복이 주는 안정감 속에서도 불안감은 계속해서 꽃 피었다.
나에게 일어날 큰 사건들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