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세상에서
고향에 돌아와서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도서관으로 간 후, 밤 10시에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2015년도에 있었던 모든 경찰시험에 낙방을 하고 보니, 나는 내 스스로도 굉장히 공부를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금방 합격할 줄 알았던 시험이지만, 여러 가지 굴레에 빠지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전역하고 조금 자유를 만끽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할지, 또 전에 공부를 같이 하기로 했던 친구들과도 좀 더
시간을 두고 뭔가를 했으면 그런 결과를 맞이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 사실을 수용한 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떠올려야만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독하고, 대책이 없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법들이 문제라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몰랐다. 공부를 잘했던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때 당시에 결국 내 발을 붙잡았던 것은 '영어'라는 과목이었고, 형사소송법의 개념의 문제였다.
합격하기 위해서는 이 벽을 넘어야만 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는 공부를 해야만 했고, 이 벽을 넘지 못할 경우에는 결국 나는 여기까지인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벽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에 다니는 선택 대신에 좀 더 효율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정했다. 수업에 대한 태도는 좋았지만, 내가 듣지 못했던 부분이나 이해를 하지 못했던 부분을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겠다는 태도의 변화가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달라졌다. 잠이 오거나, 집중이 흐릿할 때는 잠시 환기 시간을 가지고 다시 도전했고, 생각보다 어려워했던 것들이 이해를 하고 넘어가니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내가 고작 이걸 어려워하고 있었단 건가? 얼마나 수업을 집중해서 듣지 않았길래....라는 반성의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어렵다고 외면한 것들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들이 없었다. 그토록 자신이 없었던 영어 문법도, 어렵기는커녕 집중해서 들어보니 굉장히 체계적인 부분이 있어 오히려 재밌기까지 했다. 좀 더 기초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중학생 영어 문법책부터 시작해서 수능 영어까지 문제를 풀어가며 공부를 했다. 흥미를 동반하니 집중의 정도가 차원이 달랐고, 공부가 재미있기까지 했다. 내가 이제껏 회피해왔던 것들이 생각보다 별거 아닌 것이라 생각하니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생기자, 세상에는 재밌는 것들이 많아졌다.
비록 나는 처참한 실패자였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이 싫지 않았고 충족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처참한 실패자라고 생각했던 자격지심과 외부의 시선이었다.
고향에 와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것은 카카오톡의 삭제였다.
그냥 친구들의 배신으로 인간관계에 혐오감이 들었고, 같잖은 인간관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나는 발전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인간은 오로지 목적으로써 대우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있었던 나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친구들의 사진만 봐도, 좋았던 시절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고,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어낸단 말인가?라는 고뇌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내가 그들을 애틋하게 생각했던 만큼 그들도 나를 애틋하게 생각할까?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내게 비참한 기분을 맛보게 했던 친구들의 말은 청산유수처럼 멋진 말들이 많았다.
세상에서 가장 의리가 있는 사람인 것 마냥, 세상이 두 쪽 나도 끝까지 친구일 것처럼 말했다.
상황이 달라지자마자 가차 없이 친구관계를 단절했던 것이, 그 친구가 비겁해서, 의리가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상황에 순순히 굴복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는 그토록 애틋한 사이인 것 같은 여자친구와 결별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친구라고 다를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결별 소식 들려올 줄은 몰랐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크게 될 사람이 아니고, 인생에서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가 종종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나긴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그때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성격이지만, 보고 싶진 않았다. 그저 잘 지내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사람과의 만남에 집착하지 않게 되어서 편했다.
카카오톡을 삭제하고, 메시지를 받지 못하게 되니까 사람들과 만날 방법이 없으니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지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찾아왔고, 연락의 방법이나 수단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카톡을 받지 않으니 전화를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전화를 해서 영양가 없는 소리나 할 것 같은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제대로 알고 지낸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가까워도,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하더라도, 결국 진솔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성이 좋지 않을 때부터 하는 습관이었지만, 남이 나를 대하는 것만큼만 대해주면 크게 이변이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었다.
나에게 장난치듯이 대하는 사람에겐 장난일 치듯이, 가볍게 어울리는 사람에겐 가볍게, 진솔해 보이는 자에겐 진솔하게 대해주곤 했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격이 다양해졌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진실한 내 모습이 무엇인지는 탐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를 하면서 시간이 빠듯해서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와 단절된 내 세상에서의 휴식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어떤 것들을 생각하고, 어떤 것들을 결정할지는 오로지 나만의 선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