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45)

역사와 이치

by 강도르


국사



고독한 수험생활 속에서 특히나 즐거웠던 낙이 있다면 그것은 국사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국사를 공부하는 것은 인간을 공부하는 그 자체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는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 이해를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보는 것은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용어에서도 많은 것들이 녹아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런 작은 용어 하나하나에도 조상들의 삶이 녹아져 있다는 것이 마치 시대의 연결고리를 본 것같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뜻을 알지도 못하고 사용했던, 진상이라는 단어나, 왜 우리나라 화폐에는 조선시대 사람 위주로만 그려져있는지,


뭐 그런 잡다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마냥 재밌었다.



공부를 할 당시에 가장 흥미롭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역시 여말선초의 시대였다.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가 녹아있는 역사는 그 시대를 상상할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다.







용의 눈물과 정도전



정도전이라는 인물상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조선을 설계한 고려 시대의 사대부중 한 명으로 너무나 유명한 인물이다. 정도전의 강직한 성품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은 나를 강하게 매료시켰다.


심지어 그때 당시 정도전이라는 대하드라마가 방영을 했고,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심도 있게 그렸기에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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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사대부로써, 유학을 배우고 백성들을 아끼는 마음과 정의롭고 강직한 마음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기도 했지만, 그만큼 당시 집권을 하고 있던 기득권과의 마찰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우리나라의 토지에 대한 갈등은 단 한 번도 매듭지어진 적이 없는데, 정도전의 개혁 중 과전법이라는 것도 토지에 관한 갈등 자체에 대한 하나의 도전장이었다.



이 과전법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어려워서 설명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를 강하게 강의를 하던 강사분이 계셔서 감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전시과 제도라고 하여, 전국의 토지에 대해서 지방호족과 중앙관료 할 것 없이 관리의 급여로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전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땅(시지)로 나누어 각 관료가 이 땅으로부터 땔감과 쌀을 얻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토지제도는 여러 가지 세습과 과도한 수조로 인하여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전시과 제도를 경기도 지역으로 한정하여 관리들의 조세권의 폭거를 막고, 국고를 든든히 하게 한 인물이라지만,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니 급진적 사고방식을 가졌던 정도전과 뜻을 같이했던 조준의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정도전은 아예 더 나아가 기득권의 토지를 몰수하고 농민들에게 균등분배하는 계민수전을 이상향으로 보였으나, 이를 타협한 결과라고..



어찌 됐건 젊은 날의 나에게는 정도전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었다. 기득권층의 폭거를 몰아내기 위한 한 남자의 처절한 싸움을 보았다고 해야 하나?



역사는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이 한껏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도전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방원의 역사적인 행보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둘의 갈등이 마치 나의 일인 것 마냥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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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는 신권과 왕권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으로 보였지만, 둘은 모두 백성들을 위해 고심을 하던 사람이다.


물론 내가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도 아니고, 실록을 정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더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는 것은 고독했던 수험생활의 몇 없는 낙이었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적고 싶지만 그때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기분은 무언가 빛바래진 기억이 되었다.


당시에는 실록을 찾아보고 싶고, 정도전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모두 희미해진 파편이 되었다. 한참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여러 가지 인물상에 끌림을 느꼈고, 이런 인물들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고, 국가관과 역사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역사의 완결성에서 여러 가지 편집된 사실만을 가지고 내가 어떠한 사실판단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판단이 아닌 과정을 보면서 이해를 가지려고 했다.



분명히 고독한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더욱더 풍족해져 갔다.







한 발 나아가서



시험의 합격과 이런 것들을 떠나서, 무언가 내가 알게 된 깨달음을 주변에 알리고 싶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역사적 사실과 내가 깨달은 사실들을 오랜만에 본 친구들에게 신이 나서 줄 줄 설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극히 내 관점에서야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친구들은 공감하지 못했고, 2~3차례 하다가 흥미가 없어 보여서 나도 이야기하는 걸 그만둔 기억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지식의 공유와 그에 대한 토론은 나에게 너무나 신이 나는 일이었는데, 친구들은 여전히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의 이야기가 더 재밌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간만에 놀러 나온 술자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내가 더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가졌으면 하는 게 내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나도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알아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논란과 갈등이 가속화되는 화제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진위 여부보다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취하고 싶은 지식에 좀 더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편향적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나 또한 그러했다.

내가 평범한 범인에 지나지 않구나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나와 무관한 것이 없었고, 나 또한 그 큰 시스템 속에 작은 하나였을 뿐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내가 특별한 삶을 살아간다는 착각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 시점이었다.



그로 인하여 조금 더 필사적으로 공부에 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작은 점인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으며, 나는 남들과 다르기 위해서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하는 것인지,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지 이미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는 나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이어나갔다.



잡음에서 해방된 나의 자아성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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