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46)

공포의 상대성

by 강도르


상대성에 대한 이해



남성과 여성에 대한 갈등을 성차별이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었다.

물론 내가 공부를 하고 있던 수험생 시절에도 그런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성들이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건장한 남성이 여자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다거나 물리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의 발상이 없었고, 그때까지는 단 한 번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힘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어릴 적에 남자만큼 용맹한 여자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남자가 여자에게 크게 위협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에 굉장히 무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성별을 가지고 누군가를 프레임을 씌워서 보기 싫었고, 일반화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터라 그냥 갈등을 조장하는 존재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화는 없지만 조금 더 과정적인 관점에서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상대적임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어떤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부터였다.







제시카 존스



때는 2015년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벤저스를 서울에서 촬영을 하던 때였고, 어벤저스가 굉장히 흥행했기 때문에 너도 나도 마블을 찾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그때, 넷플릭스에서는 이러한 흥행의 물을 타서 여러 가지 드라마 시리즈를 전개하던 시점이었고,그런 드라마 중에서도 단연, 웰메이드였던 데어 데블 시리즈를 보고, 자경단 행위와 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를 가졌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만들어진 '제시카 존스'라는 드라마가 있다.



제시카 존스는 초능력을 가진 여성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한 손으로 멈추게 할 만큼의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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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강력한 힘을 가진 제시카 존스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굉장히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를 한 손으로 멈춰 세울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드라마는 주인공 제시카 존스가 누군가를 굉장히 두려워하면서 피해다는 도피생활을 하는 것처럼 생활을 한다.뭘까 저런 슈퍼파워를 가진 그녀를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 그냥 만나서 해치워버리면 안 되는 걸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드라마를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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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그 두려움의 대상인 '킬 그레이브'라는 빌런을 마주치는 것조차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지? 그냥 만나서 펀치 한방이면 그냥 두 동강이 날 것 같은 저 남자를 왜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이지?


그녀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그녀만을 생각하면서 만나기를 고대한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뒤틀린 관계가 된 걸까?



킬 그레이브의 능력은 타인을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페로몬을 뿜어내어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었고, 그런 능력을 이용하여 킬 그레이브가 제시카를 조종하여 갖은 악행을 하고 다닌 것이고 그로 인해 심각한 PTSD를 겪고 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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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는 킬 그레이브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망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버린 것이었다.이런 복잡한 상황을 보고 나니, 내가 어떠한 강력한 힘을 가졌다가, 타인으로부터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다고 해서 타인을 누를 수 없고, 그보다 더 복잡하게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떠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공포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에게 공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기준을 정해서가 아니라 굉장히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남성에게 폭력을 겪은 여성들은 체급 자체가 다른 남성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경험 자체가 굉장히 무서웠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런 경험이 주는 공포는 경험하기 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공포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지만 무작정 그런 경험을 미루어 다른 이들을 공포를 주는 존재로 매도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는 의도된 행위가 아니며, 자연적인 발생이기 때문에 이는 분명히 지탄해야 할 일이 아닌, 우려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공포심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조장이 되어야 하고, 그걸 이용해서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는 것일까? 그런 의구심은 깊어만 갔다.





공감 능력도 지능이다.



이런 상대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이 있다.


공감 능력도 지능이고, 타인의 입장을 미루어보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무능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청을 동반하고, 그런 경청에서부터 타인의 입장을 미루어 생각해 봄이 중요했다.오랜 수험생활 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는 횟수는 매우 줄어들었지만, 이제껏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해되지 않았던 모든 경험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자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의 사각지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 생각했던 나에게, 그런 행동들이 굉장히 못난 행동이었음을 자각하고, 상대적임을 고려하지 않은 내 판단은 다른 이름의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의 사각지대를 채워 넣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인간관계를 해결할 열쇠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다가가고, 노력해야 하며,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알려고 한다 해도 상대방이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큰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다리거나, 듣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뿐이었고 감정과 내 마음을 아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각자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들을 안고 살고 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서 위대할 수 없고, 혼자서 강해질 수 없었다.



서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타인을 배쳑하기만 하는 삶의 방식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유의미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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