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47)

여과

by 강도르


방황하는 인간관계



20대 중반부터 말은 그야말로 방황의 시대를 겪는다.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이고, 학교나 가정이라는 울타리로부터 우리는 잣대에서 자유로웠을지는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시기라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그것이 오로지 본인의 노력 여부에 대한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시작점이 같진 않고, 다만 각자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방향을 결정하는데 여기서 각자가 가진 가치관과 인생관에 대한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틈나는 대로 함께 웃을 거리를 찾아야 하지만, 각자가 짊어진 것들이 달라지는 시기이다. '누구는 빨리,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나와 너를 재단하고 더 어울리느냐, 더 어울리지 않느냐' 무리를 지어 서로가 서로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런 전쟁 같은 시기에서, 누군가는 누군가를 배신했네, 누군가가 누군가를 험담을 하더라, 많이 바빠지는 시기였다.


'누가 어디에 취직했는데 낙하산으로 꼽아주더라, 부모님이 돈이 많아서 가게를 하나 차려줬다 하더라'


모든 것이 아니꼽거나, 곱게 보이지 않는 불편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느 날, 내 옆에서 바보처럼 웃던 친구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백수였던 나는 그런 사실에 어떠한 자각이 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우쭐하며 이야기한다.


"처음엔 다 그런 것이다 펀드나 그런 것들은 좀 알아봤나?"


오랜만에 한 달에 하루를 쉬기로 정한 날에 친구들끼리 소주 한 잔을 하게 되면 으레 듣는 이야기였다.



친구였던 우리가 서로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하느라 지쳐 어떤 생각을 하는 것도 싫었던 나는 그냥 오늘만큼은 그런 복잡함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누군가는 그런 복잡함을 즐기기 시작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너도 공부를 해서 합격해 보면 알 텐데, 공무원 그거 쉬운 거 아니다? 월에 200 안되게 받아서 생활할 수 있겠어?"


그런 불편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시절.



하지만, 우리는 어렸고, 자신의 우쭐함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우쭐함에는 관용이 없다.



자격지심과 시기와 질투,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이 못 참겠는 게 아니라 평소에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앞서가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이때의 나는 사실 저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보다 수준 낮은 나를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가 곤란하고 불편한 대화를 이어나가곤 했다.



제일 밑바닥에 있던 나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친구는 없었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집을 나와서 노력을 멈췄던 적이 없다.누군가 내가 성취할 것이라고 했던 것 을 성취할 순간이 왔을 때 나에게 너는 그걸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너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어떤 반응을 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숙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거나, 어색한 분위기에 술이나 짠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누군가 겨루고, 어떤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언제나 내가 겨뤄야 하는 사람은 나였을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각자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미움받을 용기



내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공감과 소통을 했다'라고 느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함께라는 말로 묶기에는 우리가 너무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살아왔다.


타인의 과제를 내 과제인 것 마냥 신경을 썼다가 호된 경험을 하게 된 이후였기도 했고, 그런 타인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경험 속에 좋았던 기억이 없었다.



쌀을 사 먹을 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돈을 꿔주었더니, 갚지 않고 시치미를 뗀다거나 함께 더 나은 삶을 살자고 역설을 해도 어차피 나는 성가신 존재가 됐을 뿐이었다. 각자가 살아온 삶에서 각자가 얻은 결과로 세상을 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자의 자아는 비대해질 만큼 비대해졌다.물론 나라고 예외도 없었다. 그래서 내 자아가 비대해진 만큼 타인의 비대해진 자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 옛날처럼 시시덕거릴 수가 없었다.모두가 위태롭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는데 가벼운 입김마저 치명상이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상이 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잘 보여야만 했을까?"



그토록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고, 자랑스러운 친구이고 싶었던 마음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을 해온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유발했고, 때로는 가벼운 장난을 계기로 멀어지기도 했다. 친구가 정말 많았다고 생각했다. 학군단, 대학교 동아리 고향 친구들, 하지만 모두를 만날 수는 없었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었다. 그토록 치열하게 눈치 보고 열심히 인간관계를 위해 노력했지만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모래만큼이나 빠르게 흩어져 갔다. 마치 사회라는 여과기가 나를 짓눌렀고 그사이로 흩어지는 인간관계들, 언제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라는 내 마음이 무색하게 빠르게 흩어져 갔다.


그때마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며, 내가 잘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라며 자책했던 날들, 하지만 나는 타인의 수단의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정쩡하게 내게 아쉬운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 내게 염치없는 부탁을 하던 이들,하나씩 하나씩 잘라내었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 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염치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아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나처럼 생각한다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어림없었다.


내가 목적으로 대한 만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쉽게 수단으로 생각했다. 의리라는 명목하에 쉽게 내치지 못했던 것들, 마치 내가 잘못한 것만 같은 그 불편한 마음과 죄책감들이 서로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리하면서부터 간단하게 구별되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에게는 미움받아도 괜찮아


도둑과 악당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경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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