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시험이 다가왔고, 각 지역별로 모집하는 인원이 발표되었다.
막 전역하고 나서 경찰을 엄청나게 뽑았던 여파일까, 뽑는 인원이 굉장하게 줄었다.
공부를 한 지 1년이 훌쩍 넘어서인지, 아버지께서는 꼭 경남지역에 시험을 쳐야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나에게는 굉장히 거슬리기 시작하는 말이었다. 유독, 나를 믿지 못하는 그 말들이 어렸을 때부터 거슬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해야 할 일에 개입해서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유독 심기가 불편했다.
옛날부터 나는 그랬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집중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런 일로 신경을 써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 아까웠다.
한숨이 연거푸 나왔다. 왜 이렇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을까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적으로 지지와 응원을 받는 것이 아닌, 방해와 허들을 넘어야 하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이게 무슨 여길 지나가려면 나부터 쓰러트려야 한다는 그런 수문장 같은 느낌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불편한 하루가 계속됐다.
서울과 경기도 쪽 경찰 인원이 굉장히 많이 뽑았다.
문이 좁아진 경남과 부산 쪽은 확실히 쉽지 않았다. 이런 걸로 고민을 하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아버지는 경기도 쪽으로 가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싫었다. 굳이 위로 갈 거라면 서울로 가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서울, 경기 쪽 경찰 일이 유독 힘들다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정하고 싶었다. 내가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전적으로 내가 정하고 싶었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지고 싶었다.
아버지는 일단 합격만 해라, 나머지는 어떻게 해서든 밑으로 내려오게 힘써주겠다 뭐 그런 얘기를 했는데
아버지의 근거도 없는 허풍을 나는 믿지 않았다.
"어차피 가면 저기서 끝까지 근무하는 거지 내려오긴 뭘 내려와?"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울경찰로 지원서를 작성했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는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말 너무 싫었지만,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들을 떠나 생활하게 되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이렇게 금이 가 있는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날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스트레스를 주는 생각을 정리하고, 공부에 집중을 했다. 하루 온종일 공부에 관련된 생각만을 했다.
시험이 어려우면 어떡하지, 내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들은 넣어 두었다. 어차피 불안은 사람을 좀먹고 내 실패를 가속화 시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걱정은 시험을 치르고 나서 하자고 정하고 공부만을 위한 생각을 했다.
평소 실수를 많이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글을 읽는 연습을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연습을 많이 했다. 밥 먹는 시간마저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는 편안하게 국사같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과목의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내용을 들으면서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시험하는 재미도 있었다.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쓰는 에너지도 아까워서 점심은 항상 봉구스 밥버거에 쏘아를 주문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전에는 머리를 써야 하는 영어에 집중을 했고 늘어지는 오후에는 형법 판례를 읽으면서, 머리가 살아나면 형사소송법체계에 대해서 그려보곤 했다.
순수하게 암기를 많이 해야 했던 경찰학은 날을 잡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빈칸 채우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시험 준비는 순조로웠다. 매주 주말에는 스스로 셀프 모의고사를 준비해서 봤지만, 만족할 만한 점수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 결과에 일희 일비 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모르는 걸 발견한 것을 천운이라 여기며 다시 공부했다.
그런 하루들이 순식간에 지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뛰어넘은 곳에는 늘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