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49)

번뇌

by 강도르


어느 날 갑자기


여느 때처럼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로 보낸지 꽤 오래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에게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착각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굉장히 신경이 쓰일 정도라서, 자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중요한 것은 잡생각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잠깐의 시간과 노고를 들이더라도, 자리를 옮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옮기고 나니 묘한 긴장감 때문에 목이 말랐고, 정수기에 물을 뜨러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올 거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굉장히 놀랐지만 목소리는 굉장히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까 옆자리에서 내 자리를 주시하던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경찰 공부를 하시던데 저도 준비 중인지라..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어떻게 좀 조언을 받을 수 없을까요?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소리였다.


왜 이런 걸 생판 모르는 남에게 물어보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동질감보다는 나를 방해하는데 굉장히


적극적으로 방해를 받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살짝 불쾌해지기도 했다. 공부에 집중을 하고 있었던, 정신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대략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친절 중 최소한의 친절만으로 어떤 강의가 도움이 된다 정도로만 짧게 얘기를 한 후



다시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정신 공격에 정신이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고독한 인간의 나약함.



1년을 가까이 묵언 수행을 하던 나에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비슷한 처지의 여성이 시도한 교류는 굉장히 번뇌를 가져오는 자극이었다.



'공부를 하려면 말이지...'로 시작하는 오지랖을 가진 나



'혹시 나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어서..' 운명적인 만남을 가장하는 망상장애



'오죽했으면 낯선 남자에게 저런 걸 물어볼까'로 시작하는 연민



'시험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왜 말을 거냐고!' 내 일을 방해받아 분노하는 나



등등 각각의 감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고독함은 정말로 정신적으로 사람을 나약하게 했다.


뇌 속에서 각자가 느끼던 감정들은 서로를 경쟁하듯 앞다투어 전진하였고, 그 감정들 중에 독보적으로 우승을 하게 된 것은 분노하는 나였다. 그만큼 나에게는 시험이 간절했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공부를 하러 온 곳에서, 저런 식으로 상대에게 민폐를 끼치는 존재는 아무리 무지하고 어리석었다고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민폐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욱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는지 주변에서 쭈볏거렸지만,


분노하는 내 눈초리는 굉장히 사나워져 있었고, 무언의 살기 같은 것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 하루만큼은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 평온함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슬퍼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갈팡질팡을 하기보다는 폭주하는 감정을 잘 다스려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을 해서 큰 이변은 없었다.



감정은 순간이고, 분명한 목표의식과 의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다시 견고하게 만들었다.







산책과 한숨


20160205_112220.jpg




그때는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에도 마음이 들썩이는 날들이 많았다.


친하게 지냈던 대학교 후배에게, 운동을 함께하는 형에게 걸려온 전화는 받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왕왕 이런 마음이 흔들리는 일들이 있었다.


낮아져 버린 자존감과 마주하는 순간들, 그때마다 객관적인 내 위치를 확인하곤 심난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 일 수록 걸으면서 한숨을 많이 쉬었다. 한숨을 쉬는 만큼 나를 처량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한목 했지만, 곧장 다시 진정되곤 했다.




언젠가 이 동굴 속을 헤매는 수험생활이 끝날 때를 상상하곤 했다.


하고 싶은 일들, 되고 싶은 내 모습들을 그리며 마음을 다 잡는 시간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독한 인간의 나약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한 나약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본연의 모습, 이것을 가지고 있는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손톱이 자라나듯 마음속에서 피어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리고 오로지 정리하는 나만이 있을 뿐.



그때의 나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었다.






이전 18화허물인생(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