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진 주사위
수험생활이 길어질 때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답은 거창하지 않고 단답형으로 나온다.
내가 정했으니까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내가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는가? 에 대한 내 선택이었고,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도전이었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벌써 시험은 횟수로만 6번째였다.
5번째 시험을 시간이 모자라 어이없게 떨어진 것이 떠올라 더 울컥하는 마음이 커졌다.
시간이 야박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나를 부추겼다.
진짜 후회할 시간도 없다는 말이 이런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종종 떠올랐다.
내가 이번에 떨어진다고 해도 다음이 있다는 그 마음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 봤던 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This is how I did it, Anton. I've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빈센트 프리먼
직역하자면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 안톤
그래서 널 이기는 거야' 정도이다.
영화는 유전적으로 우수한 동생이 부적합한 유전자를 가진 형에게 '어떻게 네가 날 이길 수 있냐?'는 질문에 주인공인 형이 동생에게 하는 말이다.
나 또한 내가 살려면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시험에 떨어지면 더 이상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란 마음을 먹었다.
시험 전날에는 비가 내렸다.
뭔가 암시하는 기분도 들었고, 여름의 끝자락에 불태웠던 의지를 식혀주는 느낌도 있었다.
'만으로 26세'
참 어정 쩡쩡 한 나이였다.
5번의 실패가 나에게 패배의 이미지를 심어주어
무엇을 하던 불안이 몰려오게 했다.
그토록 닳도록 읽었던 책들과 풀어낸 문제집들을 떠올리면 나는 정말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시험에 떨어진다면, 나는 애초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역으로 차분해졌다.
그저 이리저리 날뛰는 마음을 달래며 서울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시간을 올바르게 썼다고 생각하면 차분해지지만, 아직 나에게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분주해졌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불안은 기억을 좀먹는다.
알 것 같은 것도 흐릿하게 만들어 나를 안달하게 했다.
생전 처음 와본 서울의 노원구라는 장소의 풍경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합격하게 된다면 나는 이제 여기서 터를 잡고 살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기분전환이 되었다.
아침 일찍 시험을 치는 학교에 앉아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100문제 100분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눈으로는 지문을 읽고 손으로는 체크를 한다.
국사 영어 형법 형소법 경찰학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영어를 마지막으로 하고 자신이 있었던 국사를 먼저 풀었다.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서 그런가?
교실에 앉아 있는 약 38명 중에 1명만이 시험에 합격한다고 생각하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시작 선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공정한 시험도 아니었다.
난 이미 똑같은 시험을 몇 번이나 쳤던가? 변별력을 위해서 시험은 난이도가 올라가고, 지엽적인 문제들이 많아서 두통을 유발했다.
하지만 확신했다 내가 모르는 게 있다면 여기 사람들 모두가 모른다고, 나를 헷갈리게 만든 문제에는 집착하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운에 맡기던 하기로 하고 과감하게 시험을 치렀다.
숨 막히는 100분이 지났다.
너무 어려웠다. 형법의 지문도 길었고, 지엽적으로 나온 문제들은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허탈함과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시험감독관에게 끌려가는 내 답안지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 됐건 준비한 것을 다 쏟아낸 것이다.
일단 이걸로 끝난 것이고 다음은 결과가 나온 후 정하기로 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