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
경찰시험을 합격하고 나니, 완벽한 자립을 한 느낌이 들었다.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지를 생각해야만 했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
무언가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면 뭔가 뚜렷한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중앙경찰학교에 입교를 하고, 방을 배정받고 합격생들을 보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둘러보지만 이 사람들도 저마다의 인생을 살면서 여기까지 도달했을 것인데
어떤 특별한 오오라가 있거나 하지 않았다. 나처럼 2년 가까이 공부를 해서 온 사람도 있고,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6개월 만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다.
경찰학교생활을 하면서 많은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적어도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합격을 해서 나와 함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거창한 야망을 가진 사람도 있고, 정말로 대차게 운이 좋았던 사람도 있었고, 정말 복잡한 여러 명의 사람들을 경험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무언가를 준비하자고 했다.
나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시작한 사람, 늦게 시작했더라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
예전에 준비했던 것들이 빨리 합격하는 것에 도움이 된 사람, 머리가 정말 좋아서 합격한 사람, 공부하는데 요령이 있는 사람.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 준비된 삶을 보고 있자니 저마다의 인생에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너의 인생이 더 멋진 인생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복잡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각자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졌던 생각은 아무래도, 여자친구에 대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완성된 시점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왜 나에게 여자친구가 없냐?'라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꽤나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지만, 이해도를 중점으로 서술해 볼까 한다.
사실 여자친구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대한 가치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줄여서 이성관, 정도로 말할 수 있겠지만, 요즘 말로 대체하자면, 성인지 감수성? 굳이 따지고 들자면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맥락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야기를 계속해 볼까 한다.
글쓴이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해서 서술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성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생물과도 같았다.
다들 알다시피, 성장의 개념에서는 성장기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을 한참을 앞서가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이성을 좋아한다는 개념은 '동경'과도 같았다.
나보다 앞서가는 존재에 대한 존경. 그래서, 처음 이성에 대해서 가졌던 감정은 이뻐서 좋다, 매력적이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나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능숙하고, 잘하는 존재에 대한 존경심이 호감을 대체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본능적으로 이성적인 끌림이 있다고 해도, 존경심이 생기지 않으면 곧바로 이성적인 호감을 단절하곤 했다.
이게 처음 그런 식으로 인식이 되었기 때문일까?
여성을 보게 되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이성적인 끌림이 있어도 이런 감정이 나에게 정당한 감정인가를 평가하는 또 다른 내가 있었기 때문에 이성 교제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조금 먹은 뒤의 지금에서야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참 이성에 대한 교류가 많았어야 할 젊은이에게는 저주와도 같았다.
어떤 끌림이 있어도, 어떤 냉정한 평가가 감정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이성 교제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어설프게 감정에 다이빙을 하는 일이 없었고, 다가오는 여성에 대한 철벽 또한 완강했다.
그래서 대학교 때도 그렇고, 연애를 해 본 경험이 '0'에 수렴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여성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 존재였다.
나에게는 한껏 어려웠던 이성 교제를 뒤로한 채, 경찰학교에서의 생활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곳이었다.
의, 식, 주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그다음을 향하는 것은 당연히 이성 교제였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건장한 남녀가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해서 의식하고 노력했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가 무언가 어필을 해서 이성에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삶에 충실한 나의 태도를 보고 누군가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굉장히 철없는 남성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적극적으로 뛰어들던 짝 찾기에서도 나는 역시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동기들은 적극적으로 소개팅을 권했다.
좋은 여자와 나쁜 여자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물론, 나는 그런 논리에는 수긍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누군가를 경험을 한다는 것은, 다음 사람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전까지 겪었던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다.
사람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을지언정, 누군가를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그것보다 해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람은 저마다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삶에 대한 태도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대화를 해서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 경험에 의해서 대처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급한 성격과 과도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려는 습성 때문이었을까?
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부담스러워하거나,'왜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하나'라는 것이 상대측의 논리였다.
거리감이 너무 단시간에 가까워지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사실,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이것조차 상대를 받아들일 이유나 여유가 없다면, 앞으로도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괴로울지언정 결과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방의 배경이 어떻건, 외모가 어떻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초의 끌림은 있다 하더라도, 내 이성이 처절하게 그것을 박살 내주었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질색하는 내 성격이 한몫했을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나만의 방식이 처절하게 박살 나는 사건이 생겨버렸다.
나처럼 드러내면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숨겨가면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