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효율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렸을 때는 이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펴서 아름다움을 자랑하듯이 나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곧 연애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데 있어서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이 뇌 속에 박혀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허물을 보려고 할 때는 재빠르게 거리를 두었다.
누군가는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가 틈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언제나 깐깐하고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피곤해 보인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이 끌리는 것에 대한 긍정이 없었다. 자체만으로 좋아해 준다는 것이 의지와는 무관하단 것도 사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도 최근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선별이 중요했다.
물론 선별을 한다고 이루어질 것도 아니었고, 막상 선별했다 생각해서 아니, 그저 끌림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 끌림이라는 흐름을 탔을 땐 언제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어리숙했기 때문일까 나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게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미련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아마 좀 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싶다.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나를 구성하는 성격은 결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나르시시즘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취해있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페르소나를 연기하고 그 페르소나 자체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를 보고 상대를 대해야 하는데 상대에게 비칠 나를 상상하며 대했었다.
그리고 나를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을 물어뜯는데 열중했다.
맞는 말을 처맞는 말로 하는 그런 부류였을지도 모르겠다.
자아도취형 인간에게 걸맞은 평가는
재수 없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툭하면 설교를 늘어놓고 툭하면 자기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대화, 즐거울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말을 하는 나는 재밌었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곤 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상대방이 하는 얘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경험담과 연결시켜 내 이야기로 만드는 상황을 반복하고서야 내가 이상하단 걸 알았다.이런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겠다. 날 때부터 높았던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의 결합은 내게 위기의식마저 앗아갔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존재에게는 그에 걸맞은 시련을 내려주었다.
첫 연애는 그 상황과 시기가 이를 피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예의 바른 말투와 서글서글한 성격, 그리고 붙임성도 좋았다.
딱히 밀어낼 이유가 없는 성품
외모가 뛰어나거나 내가 생각했던 이상형도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끌림도 있었다.
나쁘지 않은 대화의 주고받음,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식사도 같이 하고, 한차례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좀처럼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성격에 어느 순간 연락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연락을 기다리게 되는 게 그때 당시에는 그게 호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을 보는 것과 겪어보는 것은 달랐다. 내게 호감이 있다면, 나도 좋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태도를 고수하던 나는 사고가 매몰되어 갔던 것이 틀림이 없었다.
분명히 내게 호감이 있음이 틀림없다 생각했고 그 사람에게 교제를 제안했다.
당연히 수락을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속으로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호감이 없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한다고? 대학생 때에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또 잘못 봤구나.. 이거 뭐 진짜 어장관리 같은 건가라는 생각에 굉장히 기운이 빠졌던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그 사람은 나와의 교제를 수락했다.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첫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얼떨떨한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나를 인정한 이성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반면에 교제를 제안했을 때의 머뭇거림이 불안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무언가 잡히지 않는 어떤 것을 마냥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데이트를 하는데 즐겁지가 않았다.
분명히 사귀기 전에 밥을 먹을 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은데 상대방의 표정은 왜 이렇게 안 좋은지 그걸 보고 좋지 않은 내 표정을 숨기느라 안면 근육이 작살이 나버릴 것만 같았다.
연락도 잘되지 않았고, 나와 있지 않는 시간에는 다른 남성과 지내는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술에 취한 채로 연락이 두절되기까지...
그때 생각했다.
왜 행복하지가 않을까
연애는 행복하고 좋은 것이고 사랑받는 느낌 가득한 아주 좋을 것 같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는 느낌을 받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너무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
그래서였나 여자친구와 술을 한잔 마셨던 날이 있었다.
어떤 얘기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의 결혼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었다.
연애 초반이기도 했고 서로 나눴어야 할 많은 이야기 중 하나였기도 했기 때문에, 술도 들어간 것도 있고 진중한 이야기가 오갔다.
주제 자체도 무거웠지만, 술을 먹어서였는지 여자친구에게 "결혼을 하고 싶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도 하지만 일단 너랑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뒤로한 채, 이 말이 원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00일도 넘기지 못한 채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만나서도 아니고 전화도 아니고 카카오톡으로 전한 그 말은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첫 연애였기 때문에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고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팠다. 실패할리 없다고 생각했던 연애는 생각보다 비참하게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얼마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생활에 활력이 돌아왔다.
마음속에 심어진 불안에서 벗어난 탓일까 ? 오히려 연애 중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충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헤어질 즘에 말했던 여자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자기는 썸 중독자라며, 사귀고 난 뒤에 마음이 너무 빨리 식어버린다고 그렇게 남자친구를 몇 차례 갈아치웠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그걸 지금 사귀고 있는 나에게 말을 하는가 싶었지만, 되돌아보니 너에게 볼장 없단 걸 돌려 말했던 게 아닐까 싶다.
연애를 하면서 나를 대했던 태도, 행동들이 그 사람을 정의했다 처음에 서글서글해 보였던 행동들도 전부 가짜였구나 생각을 하니, 나도 나였지만 굉장히 문제아와 연애를 했었다는 생각이 지금도 가끔 든다.
결국,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몇 번 소식을 들었지만 좋은 이야기가 들려오진 않았다 그저 미련했던 나에게만 보인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딱히 내 첫 연애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인생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사람 보는 눈이 없었고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매몰되어 덜컥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했던 것은 나의 좋지 않은 단점 중 하나가 크게 부각된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얻은 교훈은 크게 한 마디로 정리되는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100일가량을 투자해가며 얻을 교훈은 아니었다.
마음과 효율은 항상 그 방향을 달리한다 언제나 그렇듯,과거를 미화하거나 왜곡해 봐야 내게 남을 것도 없겠지만 이 사건이 내게 남긴 것은 굉장히 효율적이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를 둘 라싸고 있는 상황은 복잡함을 넘어선 복잡함을 가지고 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불안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던 그 기간이 너무나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만큼 그 기간에서 벗어났을 때의 행복은 또 그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 인생은 여러모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