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시험에 합격을 한 후, 직업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간관계의 회복이 시작되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서 만나고, 오랜 시간 동안 소홀히 대했음에도, 나를 찾아주고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었다.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바닥에 있다는 이유로 멀어지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직업이 생겨서 그런가 서로가 서로에게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이해관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이라던가 그런 감정은 딱히 없었다.
나 또한, 내가 여유가 없어지기 시작하니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저마다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자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어떤 친구 사이의 의리라던가, 지켜야 할 예의를 의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쪽이
잘못된 인간이라는 흑백논리식의 사고방식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그런 의리와 예의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렇게 최악의 상황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내가 대단하거나 굉장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단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그래도 나이라도 먹어서 가질 수 있는 작은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동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각자 그 시기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에 쉽게 삐거덕 거리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나는 친구들과 거리상으로 더 욱 멀어졌고, 만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상황은 성향은 같지만 성격이 반대인 경우라고 했던가?
나는 친구들과 성향도 비슷하지 않았고, 성격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교집합만으로 유지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것도 나이가 든 지금 시점에서야 이해하게 된 것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친구가 된다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작은 격차를 이해하기에도 20대라는 나이는 아직 어리고, 부족한 나이였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이를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사회라는 것을 감정을 수용하고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틀어막은 채로, 그런 감정 자체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 탓하는 분위기가 많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었다. 서로가 친밀한 사이일수록 어떤 관계의 역할에 따라서 발생하는 감정은 다 달랐고,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친구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투라는 감정,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거리감, 나보다 스스로를 우선시했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 여러 가지 감정이 있었지만
나처럼, 밑바닥 언저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저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친구도 끼리끼리 모이고, 비슷한 수준에서 모인다는 말을 실감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고 보면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특별한 필터조차 없을 정도로 서로 모여서 지내는 데에 관대했기 때문에 서로가 어떤 감정이 발생하고 이를 어떻게 해소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불행을 바라보고 만난 친구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듣는 사람도 있었을뿐더러, 즐거운 시점에서만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술에 취해 이야기를 하고 잊어버리는 등의 아주 간단한 활동만을 반복했기 때문일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친구를 통해서 발생하는 감정의 순환을 경험해 보지 못한 채로 관계를 지속해온 것은 결국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다름없었다.
툭하면 쓰러져 버리는 아슬아슬함, 하지만 나와 친구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있었다.
조그마한 감정의 순환에서, 상황과 입장이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을 소화해 내지 못해서 하나씩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면했었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해본다.
감정의 순환과정을 배우지 않고서는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자리를 잡고, 친구들을 바라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새로운 감정들은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멀리서 고향으로 왔을 때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을 때의 감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멀리서 이동해서 오는 만큼 만남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 노력을 알아달라는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였다 면에서 시작한 감정은 메마른 갈대밭에 불을 지른 것처럼 빠르게 번져나가는 불과 같았다.
1년에 한 번 두 번 보기 힘든 친구들을 보기 위해서, 연차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내려왔을 때
친구들의 마음속에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느꼈을 때의 감정이 너무나 생소했고, 충격적이었다.
이런 거리감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들에게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었다.
무언가 나쁜 계기나, 이유가 있어야만 멀어졌던 인간관계에서, 어떠한 큰 사건 없이 이렇게 일상적인 상황에서 보이는 하찮은 나의 존재감.
나는 친구에게서 마저 대단한 존재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런 존재감이 우정의 존재 이유였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하찮고 불필요해 보였다.
분명 함께하기로 한 성 쌓기에 나 혼자 수많은 재료를 힘들게 낑낑거리며 들고 온 느낌이 들이닥쳤다.
' 이번에는 피곤해서 가지 못하겠다'라는 말이 왜 그렇게 싫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너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을 혼자 달랬던 날들이, 마치 이것을 티조차 내지 못하는,
강제로 무덤덤한 척, 마음이 넓은 척하고 만 있어야 했던 게 문제였던 것이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하는 것을 어쩌지 못한 채, 안전핀이 뽑혀버린 수류탄을 아슬아슬하게 마음속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힘은 공포라는 감정 속 무참히 짓밟히듯, 스스로의 어둠을 받아들이는 힘은 처음 보는 감정 앞에서 주저함과 혼란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내 마음을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