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60)

회귀

by 강도르


처음 보는 사람



사람과의 교류를 하기 위해서 제일 처음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로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자기소개'를 하는 것.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자기소개라는 것은 사람마다 느끼는 부담감이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나르시시즘 기질이 있는 나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었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그때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내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들었을 땐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였을까? 그때 당시에는 내가 이야기를 잘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보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길고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았을까?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자세는 천차만별이었던 것 같다.

나의 재량이 아닌 그들의 선택이었지만, 그것이 마치 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희비가 교차하는 일들이 잦았다.






소개팅


IMG_5615.jpeg?type=w1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주변에서 여러 가지 소개팅이 많이 들어왔었다.

연애를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이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소개' 자체가 엉망이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상대방의 성격은 천차만별이었고 나는 무의미하게 앉아있는 시간을 너무나 싫어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재미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은 싫었고, 소극적이거나 계산적으로 느껴지는 행동들이 보이면 거부감부터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이끌어야만 편안한 대화가 시작될까?라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이것을 만나는 당일 해결을 해야 할 만큼 성격이 급했던 나는, 사실 그 누구보다 계산적이지 않았을까? 삘이오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을 두 번, 세 번 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식사도 하고 싶지 않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싶었다.



기본적인 외모의 끌림조차 없었다면 주선자에 대한 예의만을 차리고 만나서 반가웠단 말을 끝으로 두 번은 만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인지 관심조차 가지 않을 때가 많아서 소개팅이라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쉬는 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심지어 피로까지 감수해가며 사람을 만나는 것에는 쉬운 일이 없었다.



늘 중얼거렸다.



한 7년 정도 그냥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귀신처럼 나타나서 여자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개팅을 하기 싫다는 말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만큼 감정의 소모와 시간의 소모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흐지부지 되어가는 소개팅들을 보면서, 도대체 나의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고민에 빠져있는 나날들이었다.


차가운 겨울의 어느 날, 여전히 시큰둥하게 보내던 생일날, 먼 곳으로 파견을 나갔던 날이었는데, 대학교의 여자 후배로부터 카톡이 왔다. 뜬금없이 생일을 축하한다는 카톡이 몇 년 만에 왔던 것인데 이게 도대체 무언가 싶었다.


이 여자 후배의 정체는 바로 대학교 때 내가 짝사랑을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고백을 했다가 차였기 때문에 나에게 연락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했었고, 그때 당시 어떤 개연성이나 맥락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카톡이었다.



처음에는 적당히 둘러대면 연락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냥 카카오톡에 뜨는 내 생일이 보여서 심심하니까 연락을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서 보내온 수상한 카톡


그런 느낌이 드는 하루였다. 하지만 카톡은 쉽게 끊기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메신저나 대화는 끊어지지 않는다면 이어나가는 성격이었는데, 유독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멀고 먼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게 될 일이 있다며 얼굴이나 보자는 연락이 왔다.

7년이 지난 후에 만난 짝사랑하던 여자라..

딱히 내가 그 7년 동안 나아진 게 없었고, 그냥 이제 내 앞가림이나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멋진 귀환 이런 구도도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귀찮음과 과거의 나에 대한 예의 그 어디쯤에서 망설이는 내가 있었다.

인사치례겠거니 하며 대충 그러자로 마무리된 그날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머리 한편에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900%EF%BC%BF20250411%EF%BC%BF131548.jpg?type=w1


그렇게 간단한 듯 간단하지 않은 대화를 끝낸 지 1달 넘게 지났을 때였나?


아직은 겨울이 끝나지 않은 봄을 마중 나온 날씨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여자 후배와 마주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옛날과 변하지 않은 외모, 그리고 그때도 좋았던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 등 정말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크게 데었던 적이 있어서 최대한 이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표정은 전혀 좋지가 않았고, 생각보다 꽤 냉랭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뭔가 굉장히 맛있는 소고기를 먹고 있었던 것 같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것을 보고, 집으로 일찍 들어와 얼이 빠진 상태로 게임을 켜서 아무런 생각 없이 컨트롤러를 눌러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좋은 분위기였던 것 같지도 않았지만, 마음은 필사적으로 나를 지키기를 우선시했다.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처절한 실패의 기억이 내 마음을 지키기를 간곡히 부탁해왔다.

사람이 자존감이 떨어졌다는 표현보다는,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쏟는 일을 경계하기 시작한 나이였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상황에 놓였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냥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내 희망 사항과는 다르게, 연애에 도전을 해보겠다는 나의 다짐과는 다르게,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를 괴롭게 했다. 새로운 도전이 나를 지금과는 다른 세상으로 인도할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바닥보다 더한 바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인지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오랜만에 만난 여자 후배의 모습은 여전히 끌림이 남아있었고, 이성이 나를 지키려고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전 29화허물인생(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