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아니라 툭툭
'숨길 수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라는 문장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이 세 가지의 내용도 유명하다.
기침, 사랑 그리고 가난.
기침은 엄밀히 말하면 숨기려고 숨기는 건 아닌 거 같고(참는거겠지), 사랑도 숨기기 보다 들키고 난 이후의 관계 변화가 두려워서 그런 것 같고, 가난 하나가 제대로 '숨기고 싶다'는 의미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근데,
나는 '글'도 숨길 수 없는 것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의 세 가지, 기침, 사랑, 가난의 분류에 따르자면 '기침' 정도에 해당하겠지.
참을 수 없는 마음. 글로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마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목 그대로이다. 기침처럼 툭툭, 인후가 아니라 마음을 툭툭 치는 글들이 나에게 글을 쓰게 한다.
글 스스로가 나를 빌어 세상에 나투고 싶어한다.
그게 어떤 내용의 글이든, 제발 일단 좀 나를 세상 밖으로 내뱉어 달라 말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글의 노예가 되어, 무엇인가를 끄적이거나 반복되는 기계음을 내는 키보드 위에 무언가를 갈기지 않으면 쿨럭거리게 된다.
지금 이 글도 그렇다.
글이 글을 시켰다. 적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그건 글보다 그림이라는 형식이 더 나을 듯해 일단 메모는 해두었다. 참을 수 없는 글들을 순간적으로 참고 견딜 수 있게 하는 방식은, 이런 긴 글로로 가능하지만, 짧은 메모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놓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하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어놓은, 단상이라 하기에도 애매하고, 메모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시간이 지나서는 나도 내가 무엇을 적었는지 모르겠는 내용의 짧은 글들은 일순 조용해 진다. '나'라는 인간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었으니, 이제 그때부터는 그 글의 주인은 내가 되어 버린다. 글을 적을 때는 노예였다가, 글이 드러난 이후부터는 내가 주인이 되는데, 이 주인됨이 나쁘지 않다.
글감을 돌리고, 깎고, 살찌웠다가, 다시 커팅을 했다가 이리저리 갖고 놀다보면 글다운 글 하나가 간신히 제 구실을 하게 된다. 지금처럼, 뿌지직 배설 같은 글과는 다른, 나름의 정제과정을 거친 글 하나가 탄생하면 나는 아주 잠깐의 탈력감에 빠지고 나만의 쾌감에서 잠시 헤맸다가 '아, 이 글은 나만 보기엔 억울해' 하는 심정으로 마구마구 공유하지만 막상 열어보는 사람들이나 읽어보는 사람은 적은, 그런 소외된 유명세.
결국 내 글을 가장 많이 읽고, 좋아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나 뿐이라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이중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는.
오늘 내게 '툭툭' 거리며, 팔딱팔딱 거리며, '나에게 복무하라'라고 외친 문장은 아래의 문장이다.
내 글이 세상은 못바꿔도, 나 하나는 바꾸겠지.
글로 쓸까 하다가, 이건 그림으로 그리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메모장에 잠시 재워두었고, 그림을 그릴 체력이 남아 있을 때 그림으로 그릴 생각이다.
결국 이 글도, 내 글이 세상은 (당연히) 못바꾸겠지만, 나 하나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적는, 아주 말도 안되는, 내가 가진 글에 대한 개똥철학 되시겠다.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기침, 사랑, 가난 그리고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