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의 어느 봄날

[자연 WITH YOU]“넌, 우리에게 길들여진 거야!”

by 정종오
고양이 눈빛.jpg 지붕 위의 고양이


일요일 아침 햇살이 눈 부시다. 서남향으로 앉은 집은 늘 아침이 좋다. 햇살이 곧바로 들이닥치지 않는다. 서서히 동쪽에서 해가 뜨는, 느릿느릿한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저만치 먼저 빛을 뿌린다. 빛이 그림자를 조금씩 조금씩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만히 문가에 앉아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느림의 철학’이다. 자연이 주는 한순간, 한순간은 소중하다.

우리 집 바로 밑에 이웃집이 있다. 우리 집은 바로 뒤가 산이다. 따지자면 3부 능선쯤에 우리 집이 있다. 아랫집은 논에 지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한눈에 보인다. 시선도 편안하다. 눈을 내려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선에 들어온다. 아랫집엔 햇살이 비치는데 우리 집엔 아직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서남향의 특징이다. 우리 집에서 보는 아랫집의 햇살이 더 눈부신 이유이다.

그림자 속에서 보는 빛은 더 찬란하다. 봄 햇살은 금세 얼었던 몸을 녹여줄 만큼 따뜻하다. 밤새 얼었던 땅이 곧바로 녹는다. 차가웠던 대지가 촉촉이 햇빛으로 물들이면 따뜻한 공기가 온 대지를 적신다. 봄빛이 더 강하게 느끼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주변에 진달래, 개나리 등 붉고 노란빛이 곁들여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빛은 하나의 색깔로만 있으면 그 신선함과 강렬함이 떨어진다. 주변에 비교해 볼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더 강렬하고 더 신선하다. 봄은 원색 톤이다. 노란 개나리, 빨간 진달래, 파란 제비꽃 등등.

일요일 아침, 늦은 잠에서 깨어나 마당에 나섰다. 아랫집 지붕에 비친 햇살이 눈에 가득 찼다. 햇볕이 드는 곳과 아직 들지 않은 곳이 비교되면서 더 아름답다. 아랫집 너머로 보이는 산에는 붉은 진달래가 곳곳에 피어있다. 햇살과 그림자, 붉은 진달래는 묘한 대비를 보이면서 편안한 느낌을 던져준다.

햇살이 머무는 따뜻한 아랫집 지붕 위에 낯선 손님이 보였다. 처음엔 언뜻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고양이였다.

20200405_084850_HDR.jpg 네 마리가 쏘아보는 눈빛은 강력했다.

시골에는 들고양이가 많다. 처음엔 한, 두 마리였다가 금방 여러 마리로 늘어난다. 번식력이 뛰어나다. 처음엔 한 마리가, 그다음엔 연인이, 그 뒤엔 연인 뒤에 새끼 고양이 대여섯 마리가 조르르 따라다닌다. 우리 집 근처에도 고양이가 많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사랑해 들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돌봐주고 있는 것도 한 이유이다.

어젯밤 꽃샘추위가 몰려온 탓인지 햇살이 지붕 위를 달구자 고양이들이 배를 깔고 널브러졌다. ‘널브러졌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온몸을 쭈우~욱 늘린 채 배를 보이며 누워있다. 따땃한 햇살을 맘껏 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집 ‘사랑’이. ‘컹!컹!’ 계속 짖어댄다.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이미 ‘사랑’이가 묶여 있다는 것을 안다. 고양이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면서 ‘사랑’이의 짖는 소리를 자장가 삼았다.

우리 집 계단을 내려가 아랫집 담벼락으로 조금씩 다가섰다. 지붕 위에 있는 고양이와 20m, 10m…거리는 불과 2m 남짓. 내가 다가섰는데도 이들 고양이 무리는 지붕에서 도망갈 생각이 전혀 없다. 담벼락과 지붕 사이에 거리가 있어 내가 지붕 위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다. 설마 내가 지붕 위로 올라오기까지야 하겠느냐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 또 ‘니가 지붕 위로 올라오더라도 그때 도망가면 전혀 지장이 없다’는 우월감도 느껴졌다. 실제 고양이 눈빛에서 나를 경계하면서도 압도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고양이 네 마리는 일제히 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자신들이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포즈까지 취하는 모양새였다. 여러 번 사진을 찍었는데도 움직임 없이 나를 강력하게 응시만 했다. 눈빛 8개, 그것도 매우 큰 눈동자로 나를 압도해 보겠다는, 한 명인 나를 향해 네 마리의 고양이 눈빛이 쏟아지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고양이 네 마리는 나의 출현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 동쪽에서 떠오르는 따뜻한 햇볕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지붕 위에서 매우 행복해 보였다. 사진을 찍고 다시 우리 집으로 올라오자 그제야 혓바닥으로 털을 핥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우리 집 지킴이 ‘사랑’이와 악연과 우연이 있다. 고양이가 지나갈 때면 늘 ‘사랑’이는 컹컹 짖어댄다. 그 소리에 고양이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 일쑤였다. 우리 집 근처에 들고양이가 많은 이유가 또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으로 숙성시키기 위해 텃밭에 버린다. 그것이 고양이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되는 셈이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시간을 어떻게 아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고양이가 슬금슬금 음식물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갈 참이면 ‘사랑’이는 매우 사납게 짖어댄다. 처음에 고양이는 움찔하면서 걸음을 멈춘다. 어떤 고양이는 ‘사랑’이의 움직이는 모습만 보더라도 도망치기 바빴다. 이런 현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랑’이를 무서워하던 고양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가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묶여 있다! 쟤는 짖기만 하고 우리를 쫓아오지 못한다. 긴장하지 마라.”

이 소문은 한 고양이로부터 다른 고양이로 급속도로 전파된 것 같았다. 이후 사랑이가 아무리 짖어도 고양이는 빤히 한번 ‘사랑’이를 쳐다만 볼뿐 도망칠 생각도,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곧바로 음식물 쓰레기, 일용할 양식이 있는 곳으로 여유 있게 걸어갔다. 그들만의 식사를 한 이후에도 느릿느릿 그들의 보금자리(정확히 어디서 자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모른다)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때도 사랑이는 ‘컹! 컹!’ 짖어댔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고양이 모습에 ‘사랑’의 컹컹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올 뿐이었다.

고양이는 점점 더 ‘사랑’이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었던 것일까. 처음 기겁을 하던 고양이가 ‘사랑’이의 목줄로 더는 그들에게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판단을 하면서 긴장감이 풀어졌다. 더 나아가 고양이가 조금씩 사랑이가 묶여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처음에 ‘사랑’이 집에서 30m 이내는 절대 접근하지 않았다. 점점 거리를 좁히더니 10m 이내까지 다가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고양이가 ‘사랑’이를 놀리기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랑’이는 다가오는 고양이를 향해 계속 사납게 짖어대는데 고양이는 점점 더 다가온 셈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이제 고양이가 ‘사랑’이 앞을 지나가도 ‘사랑’이는 잘 짖지 않는다. 마침내 고양이들은 ‘사랑’이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넌, 우리에게 길들여진 거야.”

지붕 위 고양이와 짖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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