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아들

[지연 WITH YOU] 흰꽃이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by 정종오

"어디 갔니?"

"어디 있니?"

"언제 오니?"

"우리 아가, 우리 아가"

그 해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아들은

어디도 없었다

흔적도 없었다

불러도 대답 없었다

그때도 하얀 으아리 피어났을 때였다

20200517_101244.jpg 으아리(클레메티스).

"잊지 않고 또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늘 이렇게, 이때쯤 찾아주셔서."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 말씀을 안 해주시니."

흰 철쭉이 질 때쯤 늘 할머니는 찾아오셨다

일 년 동안 꼬박꼬박

모아놓은 돈을 놓고 가셨다

학교에 들어서면서도

"예쁜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학교를 나서면서도

"예쁜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20200517_101003.jpg 흰 철쭉.

40년 동안 그 할머니는 우리 학교를 찾았다고 한다

처음엔 몇만 원

이후 갈수록 더 많은 장학금을 놓고 가셨다

물어도

고맙다는 인사를 해도

어디 사시느냐 여쭤봐도

40년 동안 한결같았다

"예쁜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그 말만 하고 할머니는

발길을 돌렸다

다시 일 년 뒤를 약속하면서

20200517_101057.jpg 마거리트.

"여기 있었구나!"

"언제든 오려무나!"

"어디서든 오려무나!"

"우리 아가, 우리 아가"

이제 무섭지 않다

이제 두렵지 않다

이제 울지 않는다

40년 동안

넌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네가 다녔던 학교

네가 다녔을 학교

매년 너를 찾아 여기로 오는 길이 설레는구나

매년 너를 찾아 떠나는 길이 기다려지는구나

20200517_101529.jpg 캐모마일.

오늘이다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다

하루 종일 창문을 본다

운동장을 본다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다

저 멀리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는 할머니 모습이 보인다

10년 전 다른 학교로 떠나던 한 선생님이 내게 당부했다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찾아오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40년이 다 돼 간다고 하더군요."

"저도 전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어요."

"그 할머니는 매년 오셔서 장학금을 주시곤 말없이 떠나시곤 했습니다."

" 그 할머니 오시면 잘 부탁드립니다."

흰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예쁜' 아들 손을 잡고 등교하는 날이다

흰꽃이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20200517_101827.jpg 정향나무와 제비나비.




이전 02화붓꽃, 봄을 그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