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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Jun 14. 2021

고맙다, 바다


부산시 영도구 청학 1동


부산항 바닷가의 머리가 하얗게 샌 갈매기섬. 우선 너 참 고맙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 ‘상훈아, 밥 식는다’며 어머님의 안달 난 목소리가 하필이면 바닷가에 퍼져 고맙다. 큰 파도가 몰려오면 주먹 만한 개조개를 담아보겠다고 들고나간 빨간 다라이, 너 우리 집 마당에 있어 고맙다. 사춘기 고등학교 시절, 낭만도 눈물도 무럭무럭 자라던 시절. 가로등에 비친 바다는 마치, 금빛 병정들의 싸움터였다. 너도 고맙다. 바위게 몇 마리 이곳저곳 뒤져 가져와 놀던 학교 책상, 그곳에 있어 고맙다.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던 곳이 절벽길이어서 고맙고, 땀 흘려 오른 봉래산에 펼쳐진 광경이 태평양의 너른 품이어서 고맙다.


영도다리 난간에 걸치고 앉아 소주를 ‘캬’하고 들이키는데 때마침 갈매기 날아 고맙고, 벗이 옆에 있어 또 고맙다. 분위기 맞춰 뱃고동 울리며 들어오던 고깃배야, 너 고맙다. 이른 아침, 자갈치 아지매의 걸쭉한 입담에서 ‘짠내’나 고맙고, 좌판에 깔린 고등어도 두 눈깔 싱싱해 고맙다. 시인 이생진이 먹은 것이 해삼이라서, 마신 곳이 방파제라서 고맙다. 그래,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한 것은 바다여서 더더욱 고맙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흔들리는 소나무, 힘겨워 보이는 조랑말 한 마리, 보면 볼수록 슬퍼지는 허리 굽은 할배에게 불어닥친 것이 바닷바람이기에 눈길이 간다. 고맙다. 정태춘의 노랫말 마냥 서해 먼바다 위에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와서 고맙다.


주꾸미, 밴댕이, 너희들. 계절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알을 까라. 부안 계화도 살금 포구의 망둥어야, 살아나라. 군산 비응도 포구에서 퉁퉁 불어 떠 오른 상괭이, 여수 소리도에서 다시 헤엄쳐라. 그러면 얼마나 고맙겠니.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조기 떼 산란하는 그곳이 칠산바다여서 고맙고, 위도에서 전어 굽는 냄새에 노래 부르니, 참 고맙다. 영산강 따라 몽산포구까지 애써 올라온 알찬 숭어 고맙고, 실뱀장어 질긴 목숨 고창 풍천강 올라 고맙다. 임진강에 황복도 오르고, 양양 남대천으로 황어도 끈질기게 올라라. 고맙게 올라라. 서귀포 범섬 산호 정원의 연산호야,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제주바당 늙은 해녀의 굽은 허리, 물속에서 똑바로 펴져서 참 고맙다. 칼바람 부는 날, 고흥의 어느 무인도에서 함께 손 녹인 벗 고맙고, ‘가히 살만한 섬’을 지켜준 님 고맙다. “난 ‘게’ 없인 못 살겠다”던 욕심 없는 님 만나 고맙다.      


제주 우도 출신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때 징용 가 필리핀 해역에서 수장되셨다. 제주 평대 출신 할머니는 평생 홀로 여수, 순천, 통영, 부산을 다니며 생선 장사를 하셨다. 어머니 물질하시고, 아버지 연안부두 배 띄우니, 지금 생각하니 당신, 더할 나위 없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바다에 그토록 미치게 만들던 너. 네가 나여서 더없이 고맙다. 고맙다.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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