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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Jun 15. 2021

모슬포의 봄 레시피


흩어진 섬마다 산란 행렬이 시작된다.

먼바다에서 겨울을 보낸 참돔이 육지 가까이 떼 지어 들어온 것이다. 4~5월 즈음, 수온이 16~18도로 오르면 제주 서남단 모슬포 앞바다, 가파도와 차귀도는 알을 품은 참돔으로 가득 찬다. 봄 바다가 요란스럽다. 어민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벚꽃 향 가득한 어린 참돔은 세대를 이어 어미와 같은 모습으로 모슬포 바다를 유영할 것이다. 서해 칠산바다를 향하는 조기 떼의 울음은 모슬포를 기억할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어린 실뱀장어의 3,000km 긴 여정도 모슬포에서 한숨 쉬어간다.

   

음력 2월 제주도 영등할망의 눈물이 끝나야 비바람이 멈추고 비로소 육지의 봄이 솟구친다. 찬 북서풍이 한풀 꺾이고 따뜻한 남풍이 불어온다. 사람 키 몇 배씩 자라 바다 숲을 이뤘던 모자반과 감태 군락은 물결에 쓸려간다. 제주 농부들의 파종은 그때 시작된다. 가파도의 봄은 청보리 연초록으로 더욱 빛난다. 한평생 했던 물질이지만, 늙은 할망의 굽은 허리는 놀랍게도 바다에서 펴진다. 갯무꽃의 보라와 유채꽃의 노랑이 엉켜 공동묘지조차 아름답다. 자연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한껏 존재를 뽐낸다. 우리는 그 존재로부터 상호 역동하는 거대한 생태 그물망을 알아차리고 겸손해진다. 단 한 번이라도 봄을 지긋이 지켜본 사람이라면 자연을 폭력적으로 다루진 않을 것이다. 



모슬포의 봄을 오롯이 느끼려면 서귀포 안덕에 위치한 군산오름에 올라도 좋겠다. 골 깊은 안덕계곡과 대평리 너른 땅, 박수 해안의 수직 절벽을 품 안에 담은 절경이다. 등 뒤로는 한라산의 위엄, 섶섬 문섬 범섬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중문 해안과 주상절리, 난드르의 평평한 들판, 범접하기 힘든 산방산의 기세, 형제섬을 품은 송악산 해역의 천연보호구역 ‘제주연안연산호군락’, 남방큰돌고래 바다와 푸른바다거북 산란지, 모슬포 앞 가파도와 마라도의 일몰, 한라산에서 화순으로 그리고 차귀도 바다를 감싼 숲 ‘한경-안덕 곶자왈’. 이들이 그곳에서 서로의 모습을 거침없이 뽐낼 때, 찬란한 봄은 비로소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근대의 한 철학자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연의 크기와 힘에서 ‘숭고’를 알아차린다고 했다. 숭고를 통해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도덕을 느낀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그들이 살아갈 집이 필요하다. 참돔의 산란을 위한 집, 봄꽃이 자유롭게 피어날 집, 모슬포 대자연의 풍광을 담아낼 집, 강을 거슬러 오를 물고기의 길, 바람이 불어오고 갈 그런 공간. 그러나 지금, 자본의 문명은 사람의 집과 ‘자연의 집’을 폭력적으로 점거하고 있다. 연산호와 구럼비를 걷어낸 제주 해군기지, 원주민 토지를 강제 수용한 예례 휴양단지, 비자림로 숲을 베어낸 직선의 도로, 송악산 경관을 독점하고 절단 낼 리조트 계획. 하루가 멀다고 집이 사라지는 위태로운 철거의 시대! ‘집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 되었고, 집에서 쫓겨난 이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대자연의 반격은 재앙으로 돌아왔다.



집을 잃은 그들에게 마음도 몸도 회복되는 ‘모슬포의 봄 레시피’를 바친다. 마시면 쌉쌀하고도 비릿한 맛이 묘하게 바다 향을 닮은 쐐기풀을 넣었다. 해조류의 향이 입가에 남는다. 봄의 초록을 머금은 가파도 청보리도 말렸다. 곶자왈의 첫 번째 봄소식을 알린 쑥도 한 소쿠리 캤다. 미묘하게 혀를 자극하고 감각을 깨우는 동백동산 백서향도 구해 차를 우렸다. 그러니 그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봄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집을 잃지 않기를,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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