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셈학원이라는 공간

붙잡고 싶은 기억들

by 초록테이블

속셈학원인데 주산을 배웠던 것인지 아니면 주산학원이 속셈학원으로 바뀐 것인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어릴 적 주판으로 더하기 빼기를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착착착 알을 튕기는 수준은 못되었다. 당연히 주판으로 곱셈도 못했다. 그저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학원에서 늘 들리던 촤르르 소리이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주판을 가지고 노는 소리. 스케이트처럼 두발을 올리고 타거나, 책이나 학용품을 올려서 멀리까지 전달하기도 하고 탬버린처럼 흔들고 노래하며 놀았다. 놀거리가 많지 않은 시절의 어린이는 역시 창의적이다.


동네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을 텐데, 어릴 적 우리 동네는 학구열이 높은 편이었던 것 같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다수였고, 그래서 학원에 간다는 것은 친구와 놀 시간이 확보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학원에서 뭘 공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쉬는 시간이나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나면 구석에서 한참을 놀았던 기억은 있다. 공기알은 필수품이었기에 늘 누군가의 손에는 들려있었다. 책상을 피해 한쪽 구석에 앉아 두 다리를 넓게 펴 벌린다. 두어 명만 다리를 벌리고 앉아도 큰 원형이 만들어지고, 그것은 곧 공기놀이의 무대가 되었다. 나는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껴서 놀기에는 무리가 없는 정도의 실력이었고, 확실하게 손이 야무진 친구는 꼭 있어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곤 했다. 그저 잘하는 친구가 오늘 나랑 같은 편이면 유리한 날이었다. 손바닥을 엎고 뒤집는 방식으로 편을 가르니 나름 공정하게 팀이 나누어졌고 승패도 고르게 나눠가졌다. 가끔은 아이스크림 사주기 내기도 한 것 같은데, 그것도 그저 어차피 먹을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기 위한 핑계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 속셈학원은 어쩌면 절반은 돌봄 기관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도 남아서 노는 아이가 늘 있었고, 계속 공부를 하는 아이와 시간 상관없이 선생님을 붙잡고 질문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학원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나를 보호해 주는 어른이라는 느낌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선생님을 붙잡고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배가 고플 땐 음식을 얻어먹었다. 때로 집에 어른이 없으면 괜히 선생님 곁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잔소리가 많지 않고 너무 다정하지도 않았던, 당연한 일을 한다는 담담함이 있었던 그때 그 선생님. 대구직할시 북구 산격동의 속셈학원 선생님이 가끔 생각난다. 그리고 요즘은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 그때 그 학원 같은 장소가 내 아이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아이와 아이의 친한 친구를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의 부모 중 누구에게든 부탁해도 된다고. 심심하거나 시간이 나면 집으로 와서 놀고, 아무거나 알아서 꺼내먹으라고.

아이들에게, 어쩌면 가끔은 집을 피해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아이들에게 작은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작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편이다 싶은 사람 몇 명만 있어도 안전하다 느낄 세상일 테니까 말이다.


(+) 초등학생 내내 나는 속셈학원이라는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어떤 꿍꿍이야?


hand-3062371_1280.jpg


매거진의 이전글밤의 독서실과 박하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