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변명과 엄마, 아빠
올해 1월 1일.
기억하기도 쉽게 올해부터 결혼을 준비하게 되면서 1월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남들이 해야한다는 준비를 하기에 급급했다.
엄마아빠의 빈자리가 (그렇다. 나이를 좀 먹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슬펐고
남들처럼 '행복한 결혼식' 내지는 '생애 가장 특별한 날'이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았다.
가족들 모시고 조촐하게 밥이나 한끼 하고 인사드리면서 결혼식을 대체하고 싶었다.
그러다 조촐한 식사가 말이 좋아 조촐한 식사지
그럼에도 해야 할 것들은 있었고, 애매하게 할 일들이 늘어난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됐다.
완전히 과감하게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치러야 하는 형식 안에서 최선의 결정들 혹은 최소한의 결정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혼인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교회는 아니지만 교회같은 웨딩홀을 정하고 인사를 드리고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스튜디오 웨딩촬영은 생략하고 예물도 예단도 혼수도.
어렸을 때는 곧잘 글쎄 내 기억으론 초등학교 저학년때였던 것 같다.
아빠 손을 잡고 입으로 결혼행진곡을 연주하면서 신부 입장 연습을 했었다.
엄마는 "저렇게 키워서 누구한테 어떻게 시집을 보내나" 했었고
아빠는 (그때까지만 해도 먼 일이라) 연습에 열중했었고
나는 "아무한테도 안 가면 되지" 했었다.
그렇게 서른 하나.
이것 저것 결혼을 준비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치러내고 있지만
여전히 그 날을 상상해보면 다른 것들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엄마 아빠의 빈 자리만 아른거릴 뿐이라
어떻게 해야 덜 울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할 판이다.
운동선수들이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듯이
덜 울고 조금은 웃는 훈련을 하면 정말 그렇게 되려나.
엄마가 늘 나에게 말해주었던 "넌 인복이 있어" 라는 말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큰 힘이 된다.
평생을 살면서도 좋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엄마의 말을 떠올리게 되겠지.
올해의 10월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엄마 아빠랑 신부 입장 연습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울지 않고 조금은 웃으면서 한 걸음씩 떼보기로.
엄마, 아빠 걱정하지마. 나 할 수 있어.
의외로 조금...잘 할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