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솔직하다고 하니까
가끔 엄마 아빠 꿈을 꾼다.
20대 때는 엄마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었으니까.
꿈에서 만나는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어쩐지 조금은 슬퍼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 꿈은 대개
엄마가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나만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엄마가 어디어디에서 잘 지낸다더라' 이런 소식을 듣고
내가 다시 엄마와 재회하는 뭐 그런 스토리가 반복되었다.
눈물범벅이 되는 건 매번 같았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무의식 속에서 엄마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고
나는 엄마와 가짜(?) 이별을 했다고 믿는
뭐 그런 생각이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의 이별을 부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가끔 아빠 꿈을 꾼다.
늘 또렷하게 어떤 장면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빠를 만나는 그 꿈 속에서만큼은 아주 또렷한 느낌이다.
아빠는 늘 어딘가로 바쁘게 가거나 일을 한다.
가끔은 오토바이를 탔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가끔은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고.
막상 아빠 꿈을 쓰려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꿈을 꾸면서라도
(매번 또렷한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두 사람을 가끔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잠에서 깨고 나면 마음이 헛헛한 것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당장 전화를 걸어
"아빠! 오늘 내 꿈에 아빠가 나왔더라고" 하거나
"엄마, 별일 없지?"
하고 안부를 물을 수가 없기 때문에.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가끔씩 생각했다. 이 꿈은 도대체 무슨 무의식이 반영된 걸까 하고.
내 꿈이 반영하는 내 무의식은
어떨 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지만
간혹 내가 진짜 무슨 감정으로
무슨 마음으로 특정한 대상을 대했는지 알게 해준다.
물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가 훨씬 많지만.
그 여름 엄마와의 갑작스런 이별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 겨울 아빠와의 가슴아픈 이별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를 진하게 남겼다.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고
나는 언제나 이별을 대비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별에 무방비하다.
이별에 무능하고
대처에는 무분별하고.
몇 번의 이별이 더 남아있고
앞으로도 살면서 숱한 이별을 하겠지만
조금은 미련을 덜 남기는 이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련 없는 좋은 이별까진 아니더라도
조금만 미련을 남기고
조금만 후회할 수 있는
그런 조그만 이별 정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한
내 최선의 마음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줄 수 있는 한
내 최선의 사랑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조금 더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