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날. 커피는 뜨겁게
어제에 이어.
아르바이트 첫날.
복도에는 아침햇살이 쏟아져 빛이 쏟아지고 나뭇잎들이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렸다.
저멀리서 향긋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왼쪽으로 향은 더 진해졌고. 그곳이 내가 일할 곳이었다.
그 향은 커피였고 이름은 '헤이즐넛'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주임님은 아침이면 늘 커피를 내리셨다.
헤이즐넛, 하와이안 코나, 블루마운틴 이름의 커피들을.
기억으로는 '하와이안 코나'가 제일 맛있다고 기억한다.
그 영향으로 일요일 아침이면 나도 집에서 핸드밀에 커피를 갈아 내려마시곤 했는데,
이때는 맛보다는 커피를 갈고 내리는 일련의 행위를 즐겼던 것 같다.
농도도 지금보다 훨씬 연했고.
그런가 하면 신촌의 뮤직바에서는 독약 같은 커피를 주기도 했다.
메탈리카, 스키드로우 같은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던 곳들이 있었었다.
어두컴컴한 곳에 담배연기는 자욱하고 뮤비를 보러 가서 커피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잔보다 살짝 큰 잔에 커피를 주었는데 그 맛은 무지막지하게 썼던 기억이 난다. 스틱 설탕과 프림도 함께 나왔지만 우리는 또 블랙을 고집했었지. 어두워서 더 까맣게 보였었나? 기억도 까마득하다.
잘 모르겠는데 그때 카페에서 팔던 커피는 어떤 종류의 커피였을까?
믹스커피는 혈액의 색으로 바뀔 정도로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자판기 커피의 낭만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넘어가자. :-))
어느새 별다방, 콩다방 등의 커피체인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나 커피를 좋아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별다방보다는 콩다방을 더 좋아했었다. 그 많던 콩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콩다방의 갈린 얼음을 좋아했고, 까망베르치즈케이크를 좋아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갈 카페가 정말 마땅치 않을 때만 가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사이의 어느 날, 나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된다.
Mamma Mia!!!!!
여기서 또 한 번, 아니 어쩌면 이제야 진짜로 커피맛(?)을 알게 되었으려나?
이탈리아는 단체 버스에도 에스프레소머신이 있었다. 심지어 그 커피조차 기가 막히더란 말이지.
하루에 서너 잔씩 커피를 마셨다. 마실 수 있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마셨던 것 같다.
버스에서, 카페에서, 호텔에서.
에스프레소가 쓰지 않고 고소하고 맛있다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디서든 에스프레소가 있으면 무조건 시켰고 고스란히 실망으로 끝나기를 반복.
에스프레소는 단념하기에 이른다. (몇 년 사이 에스프레소가 맛있는 집도 많아진 듯하다)
대신 지금의 입맛인 진한 샷추가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렇게 음료는 언제나 진하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귀결될 무렵
또 한 번 사적인 커피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