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살아가다.
그를 찾아갔던 밤, 나는 추위와 공포 속에 밤을 지새웠다.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함께 정했던, 우리의 기념일이 담긴 숫자는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그가 혼자 살 때 쓰던 자취방의 비밀번호였다.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순간 알았다. 그에게 이곳은 '우리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그의 소유'임을.
집 안에 그는 없었다. 대신 여전히 내 물건들이 가득했다. 본가에서부터 가져온 오랜 추억이 담긴 나의 물건들, 신혼의 꿈을 안고 손수 골라 꾸민 소파, 커튼, 올리브나무 그리고 사소한 작은 것들까지. 하지만 낯설었다. 내가 고른 침대도, 우리가 덮던 이불도 마치 다른 사람의 자리에 누운 듯 거북했다. 분가 직후, 부모님이 그리워 눈물짓던 그 집이 ‘이제야 내 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 아주 잠시였구나 싶게... 이 동네가, 이 아파트가, 나와 부모님의 자금이 들어간 이 집이 나를 밀어내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새벽 3시, 뜨거운 물을 틀고 샤워기 아래 섰다.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맞고 있는데 내 마음은 내 노력과 상관없이 아주 크고 무거운 돌이 가로막아 열리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물소리 사이로 들리는 화장실 밖의 작은 인기척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겁이 났다. ‘혹시나 그가 들어온 걸까? 화장실에 숨어있던 나를 향해 억지로 문을 열고 들왔을 때처럼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 그것보다 뻔히 나가라고 했는데도 집에 들어온 나를 경멸하듯 보면 어쩌지?’ 마치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에 침입한 사람처럼 심장은 낯선 공포에 어쩔 줄 몰라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실감했다. 그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잘라냈다는 것을.
해가 뜨기까지 짧은 시간 눈을 붙였다. 그리고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설 때, 정 들인 집 안을 눈에 꾹꾹 담았다. 마스터키와 겨울옷들이 보였다. 다음번에 혹여나 못 들어올 것을 대비해 마스터키와 다가온 추위를 대비해 겨울 옷을 챙길까, 나의 안전을 위해 챙길까, 하다가 멈췄다. 다시 돌아올 곳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이렇게 쓰라린 아침을 맞고서도 나는 우리 관계가 회복되고 이 자리에서 우리의 꿈을 다시 이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짐을 빼는 날까지 그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밤사이 신혼집을 다녀간 나에게,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를 운전해 오간 나에게, 가을 옷으로 강원도의 11월, 12월을 보내는 나에게 어떤 걱정도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침묵이라는 징벌뿐.
침묵이 이어진 날짜를 세는 것조차 지겨워졌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습관처럼 아무 연락 없는 핸드폰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카톡도 차단되어 있었다. '내가 아내가 맞긴 했나? 혼인신고라는 종이 한 장이 없어서 이렇게 쉬운 건가?' 심지어 그의 생일날조차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어떤 대화 요청을 해도, 거부한다면 거부한다는 의사라도 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기다림 끝에 이번엔 집이 아닌 낯선 곳을 향했다. 법률사무소. 괴로운 감정의 폭풍에서 현실을 살아내기 위한 방안이었다. 현실을 아는 것. 법적으로 묶이지 않은 사실혼 관계, 피해자로 둔갑한 그가 말하는 귀책사유, 실질적인 나의 피해 증거들 그리고 그의 꿈이었던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지원했던 금전적인 상황들. 어떤 사과나 공감, 인정도 없이 짐 빼라는 문자 하나로 끝내기엔 현실적인 매듭들이 남아있었다. 전문가를 통해 상황을 명확히 보는 것만으로도 몰아치는 감정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상담을 하던 변호사가 상담이 끝나갈 즈음 말했다.
"선생님,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소송을 정말 원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에 머리가 띵 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내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나 보다. 법적인 득실을 따지는 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관계의 회복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변호사의 그 한마디가 나를 잔인한 현실로 끌어당겼다. '내 마음이 상관있기나 한 걸까? 내가 원치 않는다 한들 이 이별이 멈춰지나?'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기다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고 싶던 것은 공감과 인정, 배우자에 걸맞은 대우이지, 이런 처벌 같은 침묵이 아니었다. 법률사무소를 나와서 나를 차단한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더 이상의 매달림도 호소도 아니었다. 내 발아래 오래 머물러있던 공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보냈다.
"당신의 의사를 알겠습니다. 뜻대로 하겠습니다."
부정을 지나 수용에 이르는 것은 브람스의 선율처럼 더 깊고 그윽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 거다. 현실과 다른 희망을 품다가 결국 현실을 직시하여 울음을 터뜨리는. 그래도 살아가자고 수용의 단계로 나아가는, Brahms: Intermezzo Op.118 No.2 https://youtu.be/myLSZutC1dE?si=CfV-Ml4P0nfAyt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