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살아가다.
이번 이야기는 끔찍한 정서 학대에서 살아남아 오늘을 살아가는 생존자의 기록이다. 연애부터 4년 반의 시간, 그가 내게 심어놓은 두려움을 겪고 여전히 치유해 가는 과정에 있는 나로서, 힘겨운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였다. 그가 나의 존재를 무너트리는 발언들로 가득한 문자를 보내왔다. 그가 인정이나 수용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잘 지내고 싶었던 바람을 들어주길, 회복하고 싶은 나를 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항복 요구’였다.
“폭력은 정신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예의 있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관계는 종료될 것입니다 ... 본인이 통제적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문가 상담을 통해 해결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상담예약문자 등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유일한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 저는 맞고 싶지 않습니다. 제 안전과 제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갈 것입니다 ... 무겁게 받아들이시고 본인을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문자 속의 그는 더없이 차분한 피해자였다. AI가 쓴 듯한 '침착한 가면'이자, 나의 존재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었다. 대표적인 가스라이팅 어법 7가지(부인, 고의적 무시, 경시, 주의 전환, 반박, 편견, 책임 전가)가 완벽하게 들어간 문자...
그는 나를 흡사 가정폭력범으로 몰아갔고, 우리의 갈등을 ‘둘의 문제’가 아닌, ‘나 홀로의 통제욕구와 폭력성’ 탓으로 치부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반박하고 싶었지만, 읽을수록 완벽한 제압을 하려는 그의 태도에 나의 존재는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건 아니라고, 나를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과 살면 나는 죽을 거라고... 반박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때 나의 주된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문자 속에서 '맞고 싶지 않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그는, 현실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모욕을 서슴지 않던 사람이었다. 길 한복판에서 내 머리채와 목덜미를 잡고 흔들었던 사람. 방문을 잠그고 피신해 있는 내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 손에 쇠젓가락을 쥔 채 씩씩거리던 그 모습이 내 뇌리에는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럼에도 ‘감정적이어서 그랬나 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다’하고, 이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는 마음으로 넘겼다. 그런 내게 그가 한 말은 기가 차기에 넘치게 충분하지 않은가. 가스라이터는 거울을 보지 않는다. 대신 그 거울을 상대방에게 들이밀며 '이게 너야'라고 말한다. 그가 나에게 쏟아부었던 그 비난들은 사실 그 자신에 대한 자백이었어야 했다.
그는 나에게 굴복을 바랐다. 본인이 나를 자극하고자 쏟아낸 비아냥은 쏙 뺀 채, 내가 참다못해 언성을 높이거나 물건을 던진 반응만을 잘라내어 '네가 가해자'라고 낙인찍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나는 한동안 ‘나도 가해자가 맞지’라는 죄책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명확히 말하고 싶다. 그와 나의 행동은 무게뿐 아니라 ‘의도’에서부터 달랐다고. 한계에 다다른 사람을 억압함으로써 터져 나온 반응을 그는 '폭력'이라 불렀지만, 나는 '생존을 위한 방어'라고 불러 주고 싶다.
그 문자를 받고 몇 시간을 소리 내어 울었는지 모른다. 이날을 위해 모았나 싶게 눈물이 마르지 않아 숨이 턱턱 막혀왔다. 그 문자 내용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이혼 사유가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까지도 '부부'라는 끈을 놓지 못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내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잠시 화가 나서 뱉은 말이기를. 여느 때처럼 회복되기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언약한 배우자를 이렇게까지 깎아내리고 억눌러야만 사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서...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가 보낸 날 선 비난과는 결이 다른, 서로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고 싶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연락이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금방 ‘1’이 사라졌다. 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리고 보름하고 하루 더. 그는 철저하게 침묵했다.
침묵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나를 검열했다. 정작 나는 사과나 인정 한 마디 못 들었는데, 배우자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 것도 나인데. '내 진심이 잘못 전달됐나? 이중적인 말이 있었나?' 내가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으며 나의 부족함을 찾아내려 애썼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그의 허물을 덮어주려 했던 나의 배려는 어느새 나를 죽이는 독이 되어 퍼지고 있었다. 관계를 지키려 애쓸수록 그는 당당하게 침묵했고, 내가 나를 의심할수록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다.
물리적인 정리가 되어가는 지금도 그에게 문자라도 오면, 나는 그의 이름만 보아도 공포심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또 어떤 말로 반박할지, 또 어떻게 본질과 다른 말로 괴롭힐지. 내 몸은 그에게 받은 정서적 학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명확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그리고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는 쉽사리 말할 수 없는 학대라고.
그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경시했고 자신은 결백하다 주장하며 본인이 저지른 무례와 폭력을 나에게 뒤집어씌웠다. 반응적 폭력을 유도한 뒤 자신의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고 회피했다. ‘내가 이렇게 했어야 했나?’라며 피해자가 스스로 원인을 찾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가스라이팅의 완성이었다.
연애와 결혼, 그 사이에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의 가스라이팅을. 그러나 의도 없는 ‘생존방식’ 일 거라며 내가 짊어가고 다듬어갈 대상으로 여겼다. 이내 반성하고 변화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던 그를 기대했고 사랑했으니까. 실제로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가끔씩 보여주는 변화하는 듯한 모습, 잘해주는 모습, 즉 간헐적인 보상이 깊이 각인되어 관계를 놓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듯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 아프지만 단호하게 말해주고 싶다.
상대에 대한 기대를 가지되, 그 과정에서 ‘나’를 잃지는 마세요.
‘나’의 존재가 짓밟히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기엔, 당신은 사랑받아야 하는 사람이에요. 누구보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노력과 진심을 쏟은 사람이니까요.
어떤 비난에도 훼손되지 않는 우리의 고귀한 기품을 찾길 바라며, Haydn: String Quarter No.62. "Emperor" 2nd https://youtu.be/FWX2ozwjbyQ?si=5NhMrNjsUMMMTSM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