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이 가정이 어떤 의미였을까?

이별을 살아가다.

by Green

"나에겐 심사숙고한 만큼 평생에 단 하나의 가정이었어. 여전히 미숙한 터라 감정적이기도 하지만, 잃고 싶지 않았어. 함께 변화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내가 받은 상처를 청산하고서라도 함께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그만큼 내겐 상처보다 놓기 어려운 사랑이었어. 너는 나의 사랑의 거처였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된 삶에서 내가 바란 것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헌신이 아니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틈을 맞춰가는 과정을 ‘조율하는 즐거움’으로 여기길 바랐다. 주에 한 번, 퇴근 후 5시간을 걸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서로의 하루를 안아주길. 쉼과 사랑이 있는 집, 나는 딱 그만큼의 안정감을 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공기는 달랐다. 피로도가 쌓이면 신체 반응이 먼저 오는 나는 왕복 10시간을 움직여야 하는 주말부부였다. '그가 살고 싶어 하는 그 집'에 가기 위해서 연고 없는 동네에 정 붙여 가는 중이라 의지적으로 노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식탁 위에 쌓여있는 쓰레기들, 잔해가 남아있는 싱크대, 혼자 사는 남자의 흔적이 가득한 집에 들어가면 나는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쉼과 사랑이 있는 집’을 몇 차례나 요청했지만 쉽사리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 내 눈을 감고 미루었다.


갈등이 생긴 그날, 한주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혈변까지 보게 되었다. ‘우리의 집’에서 만큼은 편히 쉬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데, 다시금 지친 몸으로 집안의 흔적들이 눈에 걸렸다. “하..”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숨에, 내 마음보다 본인의 마음이 중요한 그 사람은 나의 말투와 표정에 예민하게 날을 세웠다. “말 좀 예쁘게 해”


대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도리어 나를 향한 비난만 남는 식탁 앞에서 나는 숨을 멈추고 말도 삼켰다. 내 감정을 다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싸움이 될까 봐, 행여나 그가 기분이 상할까 봐 나는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무는 법을 익혔다.


타임아웃을 선언하는 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묵묵히 근무지로 복귀하기 위한 짐을 싸는 내게 “집 나가게? 최대한 챙겨가”라며 시비를 걸고, “기분 풀리면 그때 사과해”라며 일방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그에게 나의 인내가 바닥났다. 그의 유치한 조롱이 더해진 그날, 갈등은 폭발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깎아내렸고, 나 또한 그의 행동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 될 줄 모른 채, 늘 곁에 있을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갈등 바로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짐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대화는 원하지 않습니다." 이후,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는 허무하리만치 일방적이었다. 그가 말한 이 결론의 이유랄 것은 그저 ‘나의 존재’였다. 그래도 ‘부부니까, 지금은 감정적이어서 그렇겠지, 며칠 시간을 두면 가라앉겠지...’ 생각하며 지나친 이해를 해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철저한 침묵과 차단이었다. 그가 바란다는 사과도, 예정되어 있던 부부 상담에서 잘잘못이 아닌 미래를 다루자는 제안도,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에 대한 용서도 허공으로 흩어졌다. 대화의 문은 굳게 닫혔다.


그때부터 그는 나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나를 도려내기 시작했다. 카톡 프로필에서 우리 사진과 결혼기념일을 지우고 내가 모르던 시절의 사진을 게시했다. 생활비 통장에서 알림음과 함께 탈퇴했고,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던 캘린더는 하나둘, 그러다 통째로 삭제되었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나를 지우는 방식은 예기치 못한 속도로 나를 공격했다. 감정적인 그는 늘 그랬듯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쯤이야 놀랍지도 않다고 생각하며 애써 차분해지려 했지만, 마지막으로 현관 비밀번호가 바뀌었을 때,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에게 이 관계는 연애보다도 가벼웠다는 것을. ‘우리의 집’은 그저 ‘그의 집’이었고, 나는 그에게 듣고 싶은 말만 해야 하는 사람이며, 소중한 사람들을 모아 서약한 결혼식은 하나의 이벤트였을 뿐이란 걸.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쌓아온 시간과 약속들이, 신혼부부로서 겪어야만 하는 그 갈등을 넘기지 못하고 이런 결과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납득할 수 없는 아픔이 되어 가슴 가득히 들어앉았다. 그가 이렇게 돌아선 줄도 모른 채 홀로 한 노력들이 너무나 비참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순간, 나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나의 진심의 무게를 증명하듯 아주 무겁게 짓눌렸다.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다가갔고 기다렸다.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다 쏟아내고도 마음 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곡, Liszt: Liebestraum No.3 https://youtu.be/g6IHZOS--bY?si=U1eXMbW_tjbDK85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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