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름의 물주

이별을 살아가다.

by Green

4주 만에 답장이 왔다. 내가 돌려보낸 공, '네 뜻대로 하겠다'는 메일에 대한 그의 대답은 바로 다음 날 왔다. "감사합니다. 신속한 마무리를 원합니다." 그간 어떤 사과와 다가감에도 답이 없더니...


그 뒤에 이어진 내용은 감정이 아닌 사무적인 계산이었다. 자기가 지급할 금액은 이만큼이면 되겠냐는 정산 내역. 심지어 그 금액조차 틀려 있었다. 그는 내게 받은 적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었고, 취득세로 준 돈은 생활비였다며 말을 바꿨으며, 날 위해 쓴 돈과 시어머니가 휴지 사라고 주신 용돈까지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연락은, 관계의 회복이 아니라 관계의 정산을 향해 있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연락은 이제 원치 않을 때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천만원 단위의 금액을 다뤄야 하는 중에 일이십만원을 깎겠다고 계산기 두드리는 그 치졸함 앞에서 문득 서늘한 질문 하나가 스쳤다. "이 사람에게 나는 아내였을까, 아니면 경제적 파트너? 아니 필요할 때마다 제 돈처럼 끌어달 쓸 수 있는 물주...?"




기억을 되감아보니, 돈 앞에서 늘 그는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그는 입주 시기에 맞출법한 결혼을 반년 앞당겼다. 그 과정에서 중도금 연체 이자만 2,600만원이 되도록 손 놓고 있었고, 해결책이라곤 "남자가 집 해와야 하냐"며 내게 대출을 종용하였다. 기존에 살던 전세 사기 사실도 숨기고 있다가 아파트 자금마련에 대해 물어본 뒤에나 사실을 말했다. 그러면서 신혼집 입주 당일 갑작스럽게 3,000만원을 구할 수 있냐며 손을 벌렸을 때, "지금은 어렵다"고 하자 "서운하다"고 말하는 그였다.


심지어 무리한 대출에 더불어 부모님께 도움을 구하는 상황에서 전매도 하나의 방법임을 조언하자, 본인이 수고롭게 번 것에 대한 칭찬이 없다며 안색을 바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했다. 무례한 행동에도 그를 남편이란 이유로 지지해 주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 걱정 말라며, 본인이 책임지겠다던 그 호기는 입주와 동시에 사라졌다. 이미 주말부부라서 평일의 생활비를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내게 신혼집의 대출 이자와 관리비까지 부부라는 이름으로 요구하였다.


그의 통제는 성과급에까지 손을 뻗었다. 나의 성과급으로 취미 생활을 하려 하자 "왜 맘대로 쓰냐"며 제동을 걸었고, 결국 큰 싸움 끝에 나의 포기로 취미가 아닌 그 집의 취득세를 내는 데 써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용대출 받겠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겠다’ 같은 하지 않을 말들로 나를 자극할 뿐이었기에.


그때부터 '경제관'의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가 서운해하지 않는 방안으로 공동계좌를 제안했고 생활비를 50%씩 입금하며 잘 사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3달 전에 바꾼 핸드폰을 또다시 신형으로 바꾸는 삶을 살았다. 생활비가 부족하면 재정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에서 '무이자 차용증'을 쓰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그나마 나의 것이 그의 것이 되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ATM 같은 기분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오비이락일까. 때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에게 줄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을 했지만 내가 아끼며 모아 온 결혼 전 소유까지도 통제하고자 했다. 경제의 불균형을 느끼며 붉어진 이 상황으로 인해 도리어 자신이 내뱉은 ‘다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을 실현해야 하다 보니 내가 있으나 마나였을까. 입주 3개월, 청소로 시작한 갈등에 ‘집을 유지관리하는 게 서럽고 억울하다면 우린 함께 할 수 없다’라며 왕복 10시간을 들여 주 1회 가는 내가 집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고마움이 아닌 당연함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그는 시급한 지출이 해결되자 증거를 모았다. 나를 자극하여 언성이 높아질 때 녹음을 했고, 싸우다 쓰러진 의자 사진을 찍었다. 먹지도 않을 약을 처방받고 진료확인서를 떼어 피해 증거를 만들었다. 나와 가족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입주하지 못했을 집에 이제 나라는 존재가 필요 없어진 것 아닐까.


관계를 정리하며 부동산 시세 차익 기여분도 아닌 내가 송금한 최소한의 원금에서도 깎고 깎은 최종 정산 금액이 바뀔라 여러 차례 확정 짓던 그에게 하고 싶었던 수만 가지 말들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요란한 그의 문자엔, 아낌없이 줄 수 있다던 사랑은 없었으므로.



나의 존재보다 '역할'을 필요로 했던 그에 의해 흘러간 지난날들을 애도하며, 차이코프스키 사계 중 6월 '뱃노래' https://youtu.be/V2q95tZuaE0?si=5v0HxbgRApFSmq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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