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살아가다.
간만에 그의 이름을 보았다. 회사 업무 시스템에 올라온 그의 발령 소식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기에, 전혀 반갑지 않은 형태로 마주한 그의 이름. 연애 초, 내가 그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름이 예뻐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 이름은 내게 설렘이 아닌 심장이 쿵쾅거리는 공포를 주는 트리거일 뿐이었다.
그는 내게 그랬듯, 자신의 안부를 묻는 동료들의 모든 연락을 묵살했다. 사무실 전화도, 회사 메신저도, 개인 카톡이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우리의 사이를 모른 채, 그다음 순서로 내게 찾아와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그와 물리적으로 더 멀어진 주말부부로서 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의 침묵이 남긴 짐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의 이름을 보며 씁쓸한 기억이 스쳤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연애도, 결혼도 확신 없이 시작되었다. 밀어내도 다가오는 그를 뿌리칠 수 없었고, 간혹 내 마음을 녹이는 그의 말을 믿고 싶은 마음에 끌려왔던 관계. 그런데 이제 와 보니 끝을 향해가는 갈등도, 최종적인 이별도 모두 그에 의해서 멈추게 되었다. 시작도 끝도 내 선택보다는 그의 선택과 결정이 우선이었다. 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전하고 싶어도 모든 통로가 막혀버렸다. 철저한 무력감이었다.
그 무력감은 밤마다 악몽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한 달 이상 비워둔 집에 내 짐이 더럽혀질까 봐, 혹여나 그가 우리가 함께 꾸린 집에 다른 여자를 들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사랑의 배반에 대한 괴로움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영역이 또 침범당할까 봐' 떠는 공포였다. 꿈속의 나는 일관되게 그의 통제 안에 있었다. 대화하다 본인 맘대로 되지 않으면 안색이 변하는 그, 나의 가족을 무시하고, 결혼사진을 오려내고, 내 등 뒤에서 폭력을 행하고, 본가를 무단 침입하는 꿈... 나는 꿈에서조차 내 권리나 요구사항을 말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실은 악몽보다 더 잔인했다. "집 계약됐으니 짐 빼세요." 끝까지 나는 그 사람의 일방적인 통보 문자에 끌려다녀야 했다. 마지막으로 관계의 끝맺음을 위한 대화를 하자는 요청조차 묵살당했다. 내가 아무리 대화를 기대해고 인간적인 목소리를 내어도 그는 입력된 값만 출력하는 망할 로봇 같았다. 소통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그 집과 연결된 공인중개사마저 나를 무너뜨렸다. 중개사는 쌍방의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 발언들로 나를 문제 있는 사람 취급했다. 돈을 받는 그에게조차 나는 그저 짐만 빼면 되는, '을'도 아닌 '병'이나 '정' 쯤 되었던 걸까. 전문성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들에 나는 또다시 상처받고 아파했다. '왜 모두 나를 탓하지? 왜 내가 피해자인데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지?' 본인이 상처 준 말은 전혀 모른 채 불쾌감만 표현하는 그들. 그 로봇 같은 남자와 무례한 중개사 사이에서, 나는 벽에 대고 소리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철저한 불통의 벽 앞에서 나는 깨어났다. 공인중개사와 불쾌한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던 그날, 나는 더 이상 내 말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라지 않게 되었다. 나의 노력과 진심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무례한 이들로 인해 바닥을 치는 순간을 겪으니, 진심 어린 소통을 중요시하는 나의 가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분노였다. 울고 자책하던 나에게 찾아온 이 낯선 분노가 반가웠다. 아, 나 살아있구나. 무력감 대신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 순간, 비로소 울음을 멈추고 현재를 보았다.
가장 처절한 붕괴 뒤에야 비로소 찾아오는 서늘하고도 명징한 '살아있음'의 위로를 건네며,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0번 2악장 https://youtu.be/fubKC4TNi2g?si=JPLXFg2MOMkljxf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