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마지막 인사

이별을 마무리하다.

by Green

사랑을 재정립하고 나를 진정 사랑하는 이들과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오늘, 그간 나보다 타인에게 맞춰져 괴로웠던 관계를 정산한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채로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어보려 애썼다. 그래, 풀 수 없는 문제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쉽게 속단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가스라이팅인 걸 알고도 그를 용서하고 나를 자책했던 것도 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선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내게 정서적 괴로움 주었던 그도 악해서가 아니라 그 방식이 본인에게 유리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으리라. 이젠 그렇게 이해한다.


함께했던 4년 반의 시간 동안 반복되는 상황에서 감정을 소진하기까지 노력했다. 나를 죽이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길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내 깊은 자아는 때때로 소리쳤다. 이건 아니라고. 그때마다 그와 나는 큰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갈등의 소지가 소멸된 이제는... 평안하다. 씁쓸하지만 슬프지 않게 평안하다. 나를 갉아먹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 두려했단 것이 그에게도 쉽지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지난 시절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치 긴 꿈을 꾸다가 되돌아 온 기분이 든다. 서로의 다름에 끝없이 갈등하다가 결혼에 도달하고 달콤한 신혼을 마련하는 꿈. 그러나 우릴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꿈. 그래서 내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을 떳떳이 말할 수 없다. 슬픔을 다 토해내고 싶던 때엔 감정을 조절하느라 견디고, 이젠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아서 꺼내지 못하고 있다.


문득 분노가 올라오고, 문득 그립고, 꿈에서나마 달콤했던 시간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분노한들 닿지 않으며, 꿈과는 다른 현실을 자각할 때 내 심장은 갑자기 멈췄다가 퍽하고 몰아쳤다. 이미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그림들이 떠오르듯 복잡한 감정들이 배설되었다. 이젠 꿈에서도 난 그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떠나보내고 있다. 이렇게 하루 이틀이 더 지나면 생각나지 않는 날도 생길 거다.



이 일을 겪기 전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라’는 것이 허울 좋은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은 무엇보다 나와 타인을 건강하게 사랑하며 나를 존중하자는 기준을 세운다.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나의 죄'를 죽여야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내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님을 처절하게 배웠다. 내가 애쓴다고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왔고 내가 다가간 만큼 상대도 다가와주길 바랐는데... 이젠 내 몫이 아님을 인정하며 내려놓는다.




얼마 전 김주하 앵커의 토크쇼에서 오은영 박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이 본인의 한계를 무시한 오만함"이라고 말한 것을 보았다. 그 말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김주하 앵커가 그녀가 고통 속에 머물렀던 마음이 나와 동일했기에 놀라우면서도 애잔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내게 위로가 되었듯, 나 또한 이 글들이 가십거리가 아니라 찢어지는 아픔의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토닥임이 되길 바란다.


고통스런 잠수이혼을 맞은 후 나는 이젠 이걸 두 번째 삶이라고 받아들였다. 그 사람에게 묶여있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진 거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선물해주는 하루하루 평안한 날들 덕분에 현실이 기회로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눈물이고 사는 게 무의미하게 괴롭기만 했는데, 어느새 배고프고 어느새 가족의 사랑으로 살도 포동해졌다. 눈물의 3달을 보내는 지금 심정은 그간 고생했다는 나를 위로하는 눈물이라 다행이다.


이젠 앞으로를 본다. 이뤄지지 않을 것에 대한 꿈도 그만 꾸길. 더 이상 만나지 않길. 편안히 자고 잘 먹고 건강히 내 삶을 살길. 내 사랑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그에게 닿지 못한 내 목소리를 담아낸 이 글도 이제 마감하려 한다.




우리의 시간이 헛되다고조차 생각치 않는다. 4년 반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나의 아름다운 20대에 가장 깊은 고통과 가끔씩찾아오는 극적인 사랑에 헤맸던 그 시기. 그를 통해 나의 30대가 만들어졌으니, 앞으로를 더욱 행복한 시간으로 만듵어가길 바라니까.


그저 다짐한다. 다시는 나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을 사랑이라 착각하지 않겠다. 나를 사랑하는만큼 상대를 사랑할 것이다. 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침묵을 견디지 않겠다. 나와 상대를 위한 건강한 경계를 설정할 것이다. 행동하고 나서 해결되길 바라지 않고 이 고난의 시간을 기억하며, 침묵하고 기다릴 것이다. 무엇보다 이 이별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긴 밤들을 이제 끝내겠다.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더 넓고 깊은 그릇으로 빚어지는 시간으로 여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조금은 더 단단해졌고 조금은 더 이 세상을 따뜻함으로 대할 마음이 되었길.


안녕.

마지막 인사라곤 없었던 너에게 이말은 내가 직접 하고 싶었어.



폭풍과 투쟁은 지나갔다. 사랑도, 분노도, 그리움도, 무력함도 불타 없어진 자리에 그 재를 밟고 굳게 일어선 나의 존재를 향한 곡, 바흐 샤콘느 https://youtu.be/1F7c8zIhBGg?si=yOagtP5nsxOPcX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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