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멋진하루〉에 대하여
1년 만에 경마장에서 재회한 그들의 온도차는 극명하다. 반가워하는 병운과 ‘돈 갚아’라고 첫마디를 여는 희수. 350만원을 빌리고 1년 간 연락이 없던 병운을 찾아온 희수는 사과도 필요 없고 이자도 필요 없으니 빌린 돈만 갚으라며 오늘 안에 받아갈 거라고 단단히 다짐한 모습이다. 희수는 돈 받으러 가겠다는 병운을 따라나서며 병운 주변의 여자 사람들을 만난다.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한여사다. 희수는 회사 옥상에서 골프 치던 한여사와 한 테이블에 앉게 된다. 희수에게 묻지도 않은 채 담배를 건 낸 한여사는 사연 있는 사람을 대하듯 100만원을 준다. 이에 병운은 ‘저희가 감사하다’며 희수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하고 나온다. 돈만 받으면 된다는 자세였던 희수는 한여사와 병운과의 관계를 궁금해한다. 그런 희수에게 병운은 ‘나라는 인간을 담보로 돈을 받은 거다’며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속 편한 소리를 한다. 두 번째 만난 사람은 병운의 동창이자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성실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사정에 돈을 빌리지 못했지만 돈을 빌리러 가는 여정에서 병운과 희수는 자신들의 연애시절을 떠올린다. 자주 듣던 노래, 자주 가던 맛집 등.
희수의 전화로 병운을 찾는 여자의 전화가 온다. 낯선 여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병운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는 희수는 불쾌해 보인다. 햄버거를 먹다 말고 병운이 만난 세 번째 사람은 제자였다. 제자에게 돈을 빌리냐며 한소리를 하지만 병운은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 아니겠냐'며 타격감 zero다. 네 번째 만나게 된 사람은 세미라는 여자,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희수와 병운을 부른다. 세미는 희수를 불러놓고는 ‘병운 오빠랑 친한 여자라기에 눈부시게 예쁘다던지 그런 걸 기대했는데’ 아니라며 비아냥거린다. 뿐만 아니라 ‘좋아서 돈 줬으면서 왜 이제와 닦달이냐, 그깟 돈 줘버리겠다’는 등 희수를 자극하며 말한다. 화가 난 희수는 ‘술집 여자 주제에 고상한 척 말라’며 상처 주는 말을 한다. 결국 돈을 받고 집에서 나오지만 희수는 세미가 상처 받았을 것에 미안해한다. 이에 병운은 ‘걔는 그런 말에 익숙해져서 상처 안 받는다’고 말한다. 희수는 병운이 상처 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쉽게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병운은 '나도 상처 받았어. 희수 네가 헤어지자고 할 때 행복해 보여서'라고 한다. 대화중에 예정에 없던 홍주와 그의 남편을 만난다. 일정이 있다는 병운의 말에도 홍주의 남편은 몇 차례 붙잡는다. 4명이 함께 앉은자리는 어색해 어느 누가, 어떤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위기다. 커피와 녹차를 마시겠다는 병운과 희수의 주문을 무시하고 홍주 남편은 맥주 4잔을 시킨다. 그러고 그는 병운에게 아내와 관련된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만남으로 30만원은 받지만,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과 병운에게 드는 복잡한 생각으로 희수는 '이제 그만하자'라고 한다. 그러자 병운은 오늘 돈을 꼭 주고 싶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함께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로 만난 사람은 병운의 사촌과 그의 친구들. 병운을 앞에 두고 병운의 어려웠던 시간을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 '사업 말아먹고 마누라까지 도망갔다'는 앞담에도 병운은 개의치 않는 듯 사촌 형의 말을 인정한다. 병운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이어지는 남의 이야기에 화가 난 희수는 병운을 데리고 떠난다.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수록 지난 1년간 병운의 이야기를 듣고 병운과 사람들 간의 관계를 보게 된 희수의 표정과 말투는 점점 부드러워진다. 일곱 번째로 만난 사람은 정학당한 중학생 소연이다. 껌을 떼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소연을 도와 껌을 떼고, 그 사이 견인된 차를 찾으러 함께 걷고 버스로 이동하면서 희수는 병운으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 중 처음으로 먼저 마음을 연다. 소연을 집으로 데려다주고 지하철로 이동하던 중, 병운은 표도르 광고사진을 보고는 자신이 힘들 때 꿈에 표도르가 나와 자신을 위로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낙천적이고 편하게 생각한다고 보였지만 지난 1년간 병운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을 짐작해서 그런지 희수는 눈물을 흘린다.
마침내 차를 찾은 희수는 자신의 이야기도 꺼낸다. 병운은 희수에게 자신을 찾아와 줘서 좋았다는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오전에 만났던 이혼한 동창이다. 자신은 병운에게 도움 많이 받았기에 지금도 병운을 돕고 싶다며 40만원을 들고 찾아왔다. 그러나 희수는 받은 거로 치겠다며 20만원을 돌려주고 남은 20만원은 병운에게 다음에 받겠다고 한다. 긴 여정이 끝나갈 무렵, 희수는 병운을 역 앞에 내려준다. 하루 종일 병운을 태우고 다녔던 차에는 고쳐진 와이퍼와 쪽지가 있다. 희수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떠오른다.
제목 그대로 멋진 하루를 담은 영화다. 병운이라는 사람과 삶을 알아가며 '꽤나 멋진 하루'라고 할 만한 시간을 보낸다. 빌려준 돈 350만원을 받기 위한 여정에서 둘의 관계는 보이지 않게 발전하고 있었다. 감정을 차단시킨듯한 희수의 첫 모습부터 병운의 동창을 두 번째 만나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행동(40만원 중 20을 돌려줌)으로 보인 마지막 만남까지. 희수가 만난 병운의 지인들과의 시간 이후, 둘만의 대화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하고 있다. 상처라는 걸 모를 거라는 판단에서 그도 상처 받았음을 알게 되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음도 알게 된다. 또한 남들이 듣지 않지만 꿈을 키우고, 가진 건 없지만 한 없이 배려심 넘치는 등 새로운 면을 알아간다. 그게 관계의 즐거움일 테다.
희수는 돈을 받는 게 목적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희수가 병운을 그냥 보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돈으로 얽힌 관계를 끝내기 위함도 아니고 혹은 다시 만나기 위함도 아니라 그저, 과거에 만난 그 사람이 잘 살고 있는지, 그리워하는 마음에 마주쳐보고 싶은 그런 것. 사실 희수가 '네가 돈 없다고 하면 욕 실컷 하고 가려고 했어'라고 말 한 걸 보면 돈이 문제는 아니었을 거라 짐작한다. 결국 이들은 언제가 될지, 마무리되기나 할지 모르는 약속을 남겨둔다. 350만원 중 남은 20만원과 +알파를 받겠다는 차용증이 기약 없는 인연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연락하더라도 이상할 거 없는 사이로. 아마 이들이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조금 더 빨리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왠지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각자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갈 것 같다. 꾸준히 지속되는 관계는 아니지만 소중한 기억이 존재하는 한 그 관계는 사라진 게 아닐 테니까. 그러니 순간만 보고 끊어내지 않으면 좋겠다. '나'를 만든 시간을 함께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