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덮기 위한 거짓, 라쇼몽

영화 〈라쇼몽〉에 대하여

by Green

줄거리

라쇼몽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증언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각 인물의 시점에서 바라본 살인사건은 다음과 같다.

도적

도적 다조마루는 길을 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자 곁엔 남자가 있다. 도적은 좋은 칼이 묻힌 곳을 알려주겠다고 남자를 불러낸 뒤 포박하고는 여자에게 나무에 묶인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격렬히 도적에게 칼을 겨누고 이 모습에 반한 도적은 여자를 탐한다. 여자는 ‘두 남자에게 욕을 당하느니 죽는 게 낫겠다’며 도적에게 네가 죽던지 남편을 죽이라고 한다. 두 남자가 결투하는 사이 여자는 도망가고, 도적은 남자를 장도로 죽이고 그의 칼을 팔아버린다.

이렇게 증언한 도적은 자신의 강인함과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

여자

도적은 여자를 욕보이고 남편을 조롱한 뒤 도망간다. 여자는 남편에게 다가갔는데, 그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단도로 남편을 풀어주고 여자는 자신을 죽이라고 한다. 그러다 정신을 잃었고 일어나니 남편의 가슴에 자신의 단도가 꽂혀있었다. 자신은 몇 차례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다.

이렇게 증언한 여자는 자신의 정절을 나타내거나 여성으로서 어찌할 수 없었던 무력함을 이야기한다.

남자

남편은 죽었기에 무당을 통해 증언한다. 도적은 아내를 범한 후, 남편에게 가지 말고 자신(도적)에게 오라고 한다. 아내는 황홀하게 도적을 바라보며 좋다고 답한다. 게다가 남편을 풀어주려는 도적에게 남편을 죽여달라고 한다. 변심한 아내에게 남편은 화가 났다. 반면 도적이 ‘여자를 죽일까’ 묻는 말에 도적을 용서한다. 여자는 달아났고 여자의 단도로 남편 스스로 자결했다.

이를 통해 남자는 자신의 떳떳함과 악한 사람을 용서했다는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한다.

증인

길을 가다가 시신을 보았다고 증언했던 나무꾼이 실제 본 상황은 이렇다. 도적은 여자에게 아내가 되어달라, 받아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며 튕긴다. 이런 여자를 위해 목숨 걸기 싫다는 남편은 도적에게 여자를 데려가라고 한다. 결국 두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분노에 차, 남편이라면서 자신을 욕보인 도적을 왜 죽이지 않느냐며 자극한다. 또한 그 유명한 다조마루인데 자신(여자)을 해방시키기는커녕 다른 남자들과 다를 것 없다고 둘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결국 두 남자는 결투하고 여자는 도망간다.

증인은 위 사실을 목격했음에도 관아에서는 거짓을 말한다. 도적과 여자, 무당을 통한 남편의 증언을 듣고 나서 모두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에 괴로워한다. 관아에서 나와 라쇼몽이라는 건물에서 승려와 지나가던 행인에게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증인은 결국 사실을 보았어도 거짓을 이야기한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한다. 엮기고 싶지 않았던 본인과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고자 하는 도적, 여자, 남편이라는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전제 이야기를 들은 승려는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거짓을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다니 이게 지옥이오’라고 말한다.

진실은 하나이지만 사람들마다 자신의 의로움을 말하고, 잘못은 잊어버리는 모습이 있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하고 있다.

라쇼몽.PNG


결론

거짓을 말하는 인간을 믿지 못하는 거짓을 말하는 인간을 다룬 1950년 영화다. 아내(여성)를 소유물처럼 여긴 부분이 있어, 남편 또는 도적과 여자 사이를 인간관계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할지라도 거짓을 말하는 이유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다는 측면으로 본다면, 개인의 '사회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 사이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의 왜곡, 기억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발생한다. 경험담은 의식했던지 하지 않았던지 자기 방어적인 표현이 반영되곤 한다.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나 또는 상황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래서 그랬다. 나를 보호하려고 전부를 드러내지 않은 이야기에 알게 모르게 찜찜함이 남았던 이유가, 그거다. 감추고자 하는 그것을 벗어내면 조금 더 성장할까.

자신을 보호하려 여러겹 비늘로 덧싸고 있는 무화과 겨울눈. 비늘을 벗어내야 비로서 새 싹이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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